기록을 끄고
오직 숨소리에만 집중한 5시간 40분.
가지산의 거친 능선과
쌀바위 산장의 따뜻한 어묵이 준
잊지 못할 겨울 끝자락의 9.7km 산행 기록입니다
본문에서
코스:석암 터널- 중봉- 가지산 정상(1241m)- 헬기장 -쌀바위 - 가지산 정상 - 원점 회귀
총 7시간 (걷는 시간 5시간 40분*휴식시간 1시간 20분) 걸음 수 : 22,000보
거친 숨방울 사이로 마주한 겨울 산의 진한 여운을 전합니다.
1. 가지산 중봉에서 쌀바위까지, 숨 가쁜 여정의 시작
영남알프스의 최고봉인 가지산을 오르기 위해 채비를 마쳤습니다. 겨울의 끝자락이라지만 햇살은 참으로 포근했고, 능선을 타고 불어오는 강한 바람은 땀을 식히기에 시원했습니다. 중봉(1167m)을 지나 정상(1,241m)에 서기까지 온몸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생각을 정리하려 애썼겠지만, 이날은 그저 발걸음 하나하나에만 집중하며 묵묵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혼산이기에 주변에 신경 쓸일없는 나만의 시간이 참으로 오랫만이었습니다. 마음먹고 걸어보리란 생각은 내딛는 발자국마다 살아있다는 감각이 전해졌습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마다 느껴지는 심장 박동은 잡념을 사라지게 했고, 그저 산과 나만이 존재하는 기분이었습니다. 휴일을 맞아 산을 찾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능선을 메웠지만, 그 활기 속에서도 나만의 침묵을 즐기며 걷는 시간은 그 자체로 완벽한 힐링이 되어주었습니다.
2. 쌀바위의 전설과 산장에서 마주한 뜻밖의 위로
정상에서 하산하는 길, 십여 년 만에 쌀바위로 향하는 길목에 섰습니다. 가볼까 말까? 너무 늦으면 어쩌지? 어둠이 내리면 어쩌지? 망설이다가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쌀바위까지 갔다가 가지산정상까지 걸리는 시간은 왕복 1시간 10분 예상, 오후 4시 까지 가지산 정상에 닿아야만 하산이 무리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빴습니다. 그곳까지는 거의 내리막길이라 수월했습니다. 그러나 분명 오르막을 올라와야만 가지산 정상에 닿게 됩니다. 하지만 그 고통마저 운동량으로 채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어느새 쌀바위에 도착하니 거대한 바위의 위용과 그 아래 전설이 적힌 안내판이 반겨주었습니다.
바위에서 쌀이 나왔다? 쌀바위의 교훈
가지산 쌀바위에는 수행 중인 스님을 위해 매일 딱 한 끼 분량의 쌀이 나오던 신비한 구멍이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더 많은 쌀을 원했던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구멍을 크게 넓히자, 쌀 대신 눈물 같은 물줄기만 흐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쌀바위 전설 중에서
가지산 정상에서 여기까지 왕복70분
숨 가쁘게 산을 오르며 마주한 이 전설은 '비워냄의 미학'을 가르쳐주는 듯했습니다. 쌀바위 산장에서 느낀 소박한 어묵 한 꼬치의 행복이, 어쩌면 그 옛날 스님이 마주했던 쌀 한 줌의 감사함과 닮아있지 않을까요?
쌀바위 인근 산장에 들러 2,000원짜리 어묵 한 꼬치를 주문했습니다. 따뜻한 국물 한 모금이 지난 겨울의 추억을 소환했습니다. 요즘 손님이 없어 한산하다는 사장님의 말씀에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지기도 했지만, 그 공간이 주는 정겨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산에도 사람의 삶에도 각자의 계절이 있음을 다시 한번 체감한 순간이었습니다.
3. 다시 능선으로,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산행의 마무리
다시 숨을 몰아쉬며 쌀바위에서 정상길로 이어지는 가파른 길을 올라왔습니다. 턱까지 헉헉대는 숨소리가 여태 운동 부족이 아닐까 생각하며 무사히 능선에 다시 올라섰을 때의 성취감은 땀 범벅으로 대신해 주었습니다. 해가 지기 전 무사히 산을 내려와 안도의 숨을 돌렸습니다.
날은 어둑해 오고 얼음골 마을에 들렀습니다. 소중한 분께 보낼 사과를 고르며 직접 맛본 그 달콤함은 오늘 산행의 고단함을 씻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2년 전 그 맛을 잊지 않고 계신 이사장님을 떠올리며 사과 한 상자를 택배로 부쳤습니다.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 했던 하루였지만, 거칠었던 숨소리와 가지산의 바람, 쌀바위 산장의 온기, 그리고 달콤한 사과의 향기까지 몸과 마음속에 깊게 새겨진 하루였습니다.
4. 마무리 멘트
이번 가지산 산행은 몸의 근육 뿐만 아니라 마음의 근육까지 단단하게 만들어준 시간이었습니다. 다시금 내 몸에게 감사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새움이 트기 전 봄맞이를 산으로는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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