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루는 마치 잘 짜인 한 편의 이야기처럼, 눈부시고 알차게 흘러간 시간이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발걸음 닿는 곳마다
마주한 풍경과 가슴 먹먹한 정
그리고 뜻밖의 인연들이 가슴을 가득 채워주었기에
그 기억들을 소중히 적어 내려간다.
관음사 일부 풍경
부처님 오신 날
관음사의 평온함으로 시작한 아침
초파일을 맞아 아침 일찍 서둘러 불을 밝힌 관음사로 향했다.
절 초입부터 오색찬란한 연등이 바람에 일렁이며 방문객을 반겼고
정성스레 피워 올린 향연기가 경내를 은은하게 감싸 안았다.
가족들의 건강과 소망을 담아등을 달고,
마음속에 묵혀두었던 소란스러운 생각들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초파일 행사에 참여하며 느낀 경건함과 평온함은
올 한 해를 또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의 양식이 되어준다.
상동면의 따스한 정과 붉은 장미 축제길
관음사를 나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사랑하는 언니와 형부가 계시는 상동면이었다.
실은 최근 언니의 건강이 조금 안 좋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쓰여, 얼굴이라도 직접 보고 올 겸
일부러 걸음을 재촉한 길이었다.
서로 마주 앉아 얼굴을 보고 나니 비로소 얹혀 있던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헤어지는 길,
언니는 몸이 아픈 와중에 나에게 챙겨 주겠다며
직접 농사지은 상추며 부추며
이것저것을 조목조목 봉지 가득 담아주었다.
언니네 집을 나설 때면
언제나 친정엄마에게 다녀오는 것 같은 훈훈한 기분이 든다.
그 따뜻한 마음을 안고 들어선 '상동장미꽃 축제길'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길을 따라 탐스럽게 피어난 붉은 장미들은
저마다 매혹적인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바람을 타고 밀려오는 짙은 장미 향의 매콤함에 취해
마치 내 얼굴까지 장미처럼 붉게 물들어버리는 듯한 착각이 든다.
핫플레이스 용두목 잔도 길
우연히 마주친 나의 시 <나선의 하늘길>
가족의 정과 꽃길의 여운을 뒤로하고
못다 한 운동을 채우기 위해 오후 4시 20분쯤 용두목 잔도 길로 향했다.
깎아지른 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잔도는 요즘 한창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는 곳이다.
이곳의 아름다움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예전에 일부러 마음을 담아 시로 남겨두었던 기억이 스친다.
땀을 흠뻑 흘리며 산성산 정상까지 숨 가쁘게 다녀오니,
어느덧 사방에 어둠이 내리고 잔도 위로 환한 경관 등이 하나둘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밤의 잔도 길을 따라 나오는데
잔도 끝자락에 사진과 문학 작품들이 아늑하게 걸려 있는 광경이 눈에 쏙 들어온다.
진장둑에 걸린 작품들과 회원들 간에
교대로 순환하며 바꾸어 거는 시화들이었다.
내 글이 그곳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한 채
무심히 지나칠 뻔했는데,
문득 익숙한 글귀가 눈에 밟힌다.
바로 내가 핫플 잔도 길을 위해 헌사했던 시 <나선의 하늘길>이었다.
조만간 다른 회원들의 작품과 또 교체되겠지만
이 아름다운 하늘길을 찾는 많은 사람이
내 글을 읽고 회원들의 글을 읽고
잠시나마 문학의 향기에 머물다 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피어오른다.
문학이 자연과 어우러지는 풍경 속에서 작가로서 깊은 보람을 느낀다.
30년 만의 기적 같은 조우, 알찬 하루의 마무리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니 저녁 7시 40분쯤 되었다.
주위는 이미 어스름해져 날이 꽤 어두웠다.
새롭게 만들어진 용활ㄷ오과 이어진 다리 위를 지나는데
저녁 공기를 맞으며 운동을 하고 계시는 네 분의 행인이 보인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말 믿기지 않는 기적을 마주한다.
어둠 속에서 서로를 알아보고 멈춰 선 이들은
다름 아닌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적 학부모 활동을 함께했던 '초등엄마' 두 분이었다.
무려 3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였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할 시간 동안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오다,
이 어두워진 다리 위에서 운명처럼 만난 것이다.
지나간 세월이 무색할 만큼 가슴이 벅차오르고
우리는 손을 맞잡고 반가움의 함성을 외친다. 참으로 반갑고 고마운 만남이다.
관음사의 평온함으로 시작해
언니의 따스한 자매사랑을 확인하고,
잔도 길에서 뜻밖에 내 시를 마주하며
마지막으로 30년 만의 소중한 인연까지
선물 받은 어제.
밤하늘을 바라보며 참으로 의미 있고
한 점 아쉬움 없이 알차게 시간을 보낸 하루였다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