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 2026-10-11

창원 정병산과 서울 백운산의 가을 교신

나이를 잊은 두 사람의 숲길 동행

​

찌뿌둥하게 가라앉은

몸을 털어내려 홀로 산길로 향했다.

가을 기운이 차차 무르익어 가는

숲속의 시간은 가속도를 붙인 듯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홀로 걷는 산길,

사색에 잠겨 걷던 발걸음 끝에

눈길을 사로잡는 뜻밖의 풍경들이

하나둘 마주해 왔다.

​

제철을 잊은 채

수줍게 고개를 내민

분홍빛 진달래 한 송이가

풀숲 사이에서 눈인사를 건넸다.

시절을 거슬러 피어난 꽃잎의

당당함에 엷은 미소가 번졌고

깊은 산속이 아니면 보기 드문 맹감(망개) 열매는

어느새 붉은 구슬처럼 탐스럽게 영글어

가을의 깊이를 알리고 있었다.

정병산 수리봉(460m)을 향해

숨을 고르며 오르다 정상 부근에서 마주한

풍경은 더없이 놀라웠다.

험준한 바위 능선 곁에 자리 잡은

감나무 가지마다

주황빛 빨간 감들이 조롱조롱 매달려

가을 햇살을 머금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오래 전

이곳을 지나던 산객이

입에 넣었던 달콤한 감의 씨앗 하나

툭 하고 뱉어냈을 터다.

​

흙 한 줌 귀한 그 척박한 바위틈에서

작은 씨앗 하나가 모진 비바람을 견뎌내며

저리도 늠름하고 풍성한 나무로 자라났다는 사실에,

경이로운 자연의 생명력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이마와 등을 타고 흐른 땀이

온몸을 적실 때쯤 밀려오는

그 개운함은 오직 산을 오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나만의 작고 확실한 행복이다.

백운산과 정병산의 가을 나눔

가만히 숨을 고르며 산 아래를 굽어보는데

반가운 휴대폰 진동과 함께

서울에 계신 이민경 선생님의 다정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선생님께서는 서울 백운산에서 내려오신다며

정갈한 산행 사진들을 보내오셨다.

안타깝다. 저 그늘아래 쉼이 힐링이었는데 고사되어가는 안타까움을 ...

세월의 흐름 앞에서도

언제나 꼿꼿하고 맑은

에너지를 잃지 않으시는 모습은

‘나이란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는

진리를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이야기 할머니로 단단하게 자리를 잡으시고

아이들의 맑은 마음에

꿈과 행복을 정성스레 심어주시는 선생님의 일상은

그 자체로 세상에 온기를 전하는

행복 전도사의 삶과 닮아 있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머리칼을 스치는 오후

서울의 백운산과 창원의 정병산이

산길 위에서 다정하게 이어졌다.

시월이 익어가는 길목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자연을 사랑하고

삶을 긍정하는 마음 하나로

우리는 함께 가을의 길목을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몸은 개운해지고 마음은 온기로 가득 찬

참으로 다정하고 눈부신 가을 하루의 혼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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