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씨알
여름 내내
시가 산자락을 쫀다
나목 사이
개여울로 흐르는 문장이
낱자의 부리로 빈 터를 찾아든다
연못 속
빛살 솟더니
진달래 동산에 불을 지필 참이다
저녁이
뒷걸음치는 날
빛을 움켜 쥔 수레국화는
산그림자 끝에서 보랏빛 발가락 환하고
하얀 손으로
더듬어 온 불꽃
초판본이
온 산에 봄을 터트린다
[에세이]세상을 깨우는 보랏빛 불꽃, 초판본 '진달래꽃'의 씨알을 그리며
충청도 소월·경암문학관의 산자락은 오늘도 시의 부리에 쫀 듯, 은은한 설렘으로 술렁입니다. 여름 내내 쉼 없이 쪼아대던 시의 씨알들이, 나목 사이 개여울을 타고 문장의 강물이 되어 흐릅니다. 낱자의 부리로 빈 터를 찾아든 시어들은, 흙먼지 속에 숨겨진 빛살을 찾아 연못 속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습니다. 그 빛살은 곧 진달래 동산에 불을 지필, 찬란한 봄의 서막입니다.
작가님의 시 '초판본 씨알'은 단순히 문학관의 풍경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 소월 시집 초판본이 지닌 숭고한 가치와 그것을 지켜낸 이철호 이사장님의 헌신적인 사랑을 노래합니다. 세상에 단 네 권뿐인 소월 시집 초판본 중 한 권을, 2억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기꺼이 치르고 품에 안은 그 마음은 단순한 소장 욕구를 넘어섭니다. 그것은 우리 문학에 대한 무한한 존경이자, 민족의 혼을 지켜내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입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 가치는, 저녁이 뒷걸음치는 날, 빛을 움켜쥔 수레국화의 보랏빛 발가락처럼 산그림자 끝에서 환하게 빛납니다. 하얀 손으로 더듬어 온 불꽃, 그것은 바로 초판본 '진달래꽃'이 품고 있는 뜨거운 생명력입니다. 그 불꽃은 온 산에 봄을 터트리며, 잊혀가던 우리 시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일깨웁니다.
올봄부터 진달래 동산에 서서히 어우러질 진달래를 상상하니, 작가님의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꽃이 피는 풍경에 대한 감동이 아니라, 소월의 시가 다시금 살아 숨 쉬는 역사적인 순간에 대한 경외심입니다. 작가님께서 김소월 시낭송협회장이시기에, 그 감동은 더욱 각별하게 다가갈 것입니다.
'초판본 씨알'은 단순한 시집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문학의 뿌리이자, 세상을 깨우는 영원한 씨알입니다. 그 씨알이 터트리는 보랏빛 불꽃은, 앞으로도 수많은 이들의 마음에 문학의 향기를 전하며, 찬란한 봄을 이어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