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2026-09-16

배 한 척, 밀물이 될 때 -석해균 싸인회-

배 한 척, 밀물이 될 때

-석해균 싸인회-

속눈썹을 유리 화면에 걸어 둔 아이들

65인치 바다에서

멈추지 않는 춤

방게들이 갯벌로 차오른다

눈동자마다 잔물결이 일고

둥글게 휘어진 줄이

발끝을 맞추는 부스 앞에서

포개진 그림자들

연필 끝이 책장에 걸리고

석해균

배 한 척 싸인은 바다가 된다

벼랑 끝을 붙잡고

돌아온 물비늘

넘기는 손끝마다 파도가 일고

사람과 방게 사이

다시 열리는 부산북페어

오후의 소란은 천천히 밀물이 된다

​

작가노트

부산북페어, 사인회 부스 앞. 나는 그날 바다를 보지 못했다.

대신 65인치 스크린에 뜬 바다를 보았고, 그 앞에 줄지어 선 아이들의 속눈썹이 유리에 닿을 듯 가까웠다.

이상한 일이었다.

실제 바다는 저만치 있었는데,

그날 내가 목격한 밀물은 사람들의 줄에서 시작되었다.

둥글게 휘어진 줄, 발끝을 맞추고 선 아이들, 연필 끝이 책장에 걸리는 소리

— 그 사소한 마찰들이 쌓여 어느 순간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석해균이라는 이름 석 자가 종이 위에 눌러 새겨질 때마다,

나는 그것이 서명이 아니라 조수(潮水)라고 생각했다.

배 한 척이 실제로 바다가 되는 순간을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의 손끝에서 나온 글씨는 활자가 아니라 물비늘이었다.

그리고 방게들. 갯벌에서 옆으로 걷는 그 작은 생물들이,

아이들의 발걸음과 겹쳐 보였다.

사람과 방게 사이 어딘가에서 부산북페어는 다시 열리고 있었다.

소란스럽던 오후는 그렇게,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천천히 밀물이 되어갔다.

이 시는 그 하루의 기록이다.

스크린 속 바다와 실제 바다, 서명과 조수, 아이와 방게

— 서로 다른 것들이 한 자리에서 만나 결국 하나의 물결로 밀려드는 그 순간을 붙잡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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