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한 척, 밀물이 될 때
-석해균 싸인회-
속눈썹을 유리 화면에 걸어 둔 아이들
65인치 바다에서
멈추지 않는 춤
방게들이 갯벌로 차오른다
눈동자마다 잔물결이 일고
둥글게 휘어진 줄이
발끝을 맞추는 부스 앞에서
포개진 그림자들
연필 끝이 책장에 걸리고
석해균
배 한 척 싸인은 바다가 된다
벼랑 끝을 붙잡고
돌아온 물비늘
넘기는 손끝마다 파도가 일고
사람과 방게 사이
다시 열리는 부산북페어
오후의 소란은 천천히 밀물이 된다
작가노트
부산북페어, 사인회 부스 앞. 나는 그날 바다를 보지 못했다.
대신 65인치 스크린에 뜬 바다를 보았고, 그 앞에 줄지어 선 아이들의 속눈썹이 유리에 닿을 듯 가까웠다.
이상한 일이었다.
실제 바다는 저만치 있었는데,
그날 내가 목격한 밀물은 사람들의 줄에서 시작되었다.
둥글게 휘어진 줄, 발끝을 맞추고 선 아이들, 연필 끝이 책장에 걸리는 소리
— 그 사소한 마찰들이 쌓여 어느 순간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석해균이라는 이름 석 자가 종이 위에 눌러 새겨질 때마다,
나는 그것이 서명이 아니라 조수(潮水)라고 생각했다.
배 한 척이 실제로 바다가 되는 순간을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의 손끝에서 나온 글씨는 활자가 아니라 물비늘이었다.
그리고 방게들. 갯벌에서 옆으로 걷는 그 작은 생물들이,
아이들의 발걸음과 겹쳐 보였다.
사람과 방게 사이 어딘가에서 부산북페어는 다시 열리고 있었다.
소란스럽던 오후는 그렇게,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천천히 밀물이 되어갔다.
이 시는 그 하루의 기록이다.
스크린 속 바다와 실제 바다, 서명과 조수, 아이와 방게
— 서로 다른 것들이 한 자리에서 만나 결국 하나의 물결로 밀려드는 그 순간을 붙잡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