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 2026-01-18

민주주의의 성지, 창원 마산 3·15민주묘지에서 ‘눈물의 책’을 읽다

1.마산의 봄, 민주주의의 고향을 찾아서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겨울의 봄날

20년을 넘게 창원에서 살았으나 한번도 찾지 못했던 곳을 찾았습니다

몇 번을 근처로 지났으나 ,결국은 오늘에야 핸들을 그 쪽으로 돌렸지요

대단한 성지였습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이자

창원의 자부심인 국립 3·15민주묘지를 찾았을 때 이곳은 단순한 묘역이 아니었습니다.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에 맞서 맨몸으로 불의에 항거했던 영혼들이 잠든 곳이자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시작점입니다.

2.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석조 시비(詩碑)’

이번 방문에서 제 발길을 가장 오래 멈추게 한 것은 바로 펼쳐진 책 모양의 조형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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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위의 신발 자국

사진 속 석상에는 누군가 밟고 지나간 듯한 선명한 군홧발 자국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당시 무력에 짓밟혔던 민주주의와 학생들의 아픔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시인의 목소리

정공채 시인의 「하늘이여」, 김용호 시인의 「해마다 4월이 오면」이 새겨진 석조 시비 앞에서는

작가로서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습니다.

"지금 하늘이여, 총을 맞은 이 땅의 봄이 마산에서 피빛으로 안타깝게 타고 있습니다" 라는 구절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한 통증으로 다가옵니다.

3. 사진으로 보는 1960년 그날의 기록

기념관 주변에 전시된 사진들은 당시의 긴박함을 증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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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상고 학생들의 시위

"김주열 군을 사살한 경찰을 학생에게 맡겨라"라는 피켓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학생들. 앳된 얼굴들이지만 그 눈빛만은 서슬 퍼런 결의로 가득 차 있습니다.

민주의 종과 부조

하늘을 향해 횃불을 든 손들

그리고 자유를 갈망하며 외치는 군상들의 부조는

마산 시민들의 뜨거운 에너지를 그대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4.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가 있었을까?

시인이자 에세이스트로서, 그리고 이 지역의 소식을 전하는 기자로서

저는 깊은 상념에 잠깁니다.

마산의 3·15 의거는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창원은 이토록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민주화 운동의 성지'입니다.

이름 없이 쓰러져간 수많은 영혼이 이 책장 속에

이 흙 속에 남아 지금의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본문 속에서

5. 잊지 않겠습니다, 마산의 정신

국립 3·15민주묘지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장이고

우리 어른들에게는 삶의 태도를 가다듬게 하는 성찰의 장소입니다.

창원 시민이라면

아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꼭 한번 이 '눈물의 책' 앞에 서보시길 권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평화로운 일상이

얼마나 값진 희생 위에서

피어난 것인지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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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월 11일, 행방불명되었던 고등학생 김주열 군이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떠올랐을 때

그의 눈에는 차마 말로 다 못 할 참혹한 최루탄이 박혀 있었습니다.

내가 느낀 그 분노와 슬픔이

당시 마산 시민들의 마음과 같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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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전라도 남원으로

시신을 운구하던 과정에서 보여준

어머니 권찬주 여사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어머니의 눈물

아들의 참혹한 시신을 확인하고도

"내 자식이 죽어서 민주주의가 산다면 나도 기쁘다"라며

울분을 삼키셨던 그 결연함

본문 중에서

단순한 모성을 넘어 민주화의 큰 어머니로 거듭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운구 길의 애사

마산을 떠나 남원으로 향하는 운구차 뒤로 시민들이 통곡하며 따랐고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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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면이 한 편의 비극적인 서사시처럼 다가왔습니다.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떠오른 소년의 모습은

마산의 분노를 불꽃으로 바꿨고

아들을 가슴에 묻으며 남원으로 향하던 어머니의 뒷모습은

민주주의라는 나무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오늘 제가 마주한 '눈물의 책' 석상에는 그날의 통곡 소리도 함께 박혀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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