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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시인, 소설가
어떤 이들에게는 이 시대가 공포일지도 모른다. 거대 지성의 등장이 인간의 모든 것을 앗아가고, 급기야는 인간을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옛것이 인간적이며 온전한 세상이라는 감상에 젖어 더욱 거부하는 몸짓으로, 피상적인 삶을 살아가지는 않을까.
사람들은 1차, 2차, 3차 산업혁명에도 비슷한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발 빠르게 시대를 읽고 새로운 문명의 이기들을 능동적으로 활용한 이들에게 세상은 기꺼이 ‘주역’의 자리를 내주었다.
‘정복’과 ‘다스림’은 단지 물리적인 영역, 타자와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다. 먼저 내 안에서 일어난다. 선인겹과 편견, 게으름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한 뼘도 나아가지 못하고 그 모양 그 꼴로, ‘우물쭈물하다가’ 끝나버릴 것이다. 생의 한 걸음 걸음이 도전이 되었을 때 인생이란 우주 안에서 얼마나 멋진 신세계를 날마다 펼쳐낼 것인가. 그리할 때 삶은 파내어도 파내어도 끝이 없는 광맥이 될 것이다. 누구와 비교할 필요 없다. 결국 ‘나’와 똑같은 우주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남들이 꺼리고 두려워하는 길에 성큼 들어서서 새로운 문명의 이기를 자신의 강점으로 만드는 지혜와 집념을 가진 이가 있다. 바로 박안평 님이다.
박안평 님은 오래 전부터 시인으로 수필가로 활동해 오고 있다. 『오늘 달릴까, 걸을까』 수필집을 비롯 시집 『봄일 때는 봄을 몰랐다』 등 다양한 문학 서적 출간은 물론 지역사회의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홍보하는 문집을 내기도 하였다.
그가 종합문예지 《한국문인》을 통해 동시로 등단하는 또 한 번의 거사를 이뤄냈다. 그 동시가 보통의 일반적인 것이 아니기에 그의 집념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AI야 하면 겁부터 먹고 멀찍이 서서 바라보기만 하는 대부분의 우리 세대와는 달리 자신의 동시를 영상화하고, 또 그 동시를 AI로 작곡하여 동요를 만들고 AI로 영상까지 만들었다. 한 편의 완벽한 동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동요를 들으며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갯벌에서 춤추고 있는 달랑게가 되어 있는, 우포늪에서 우아한 한 마리 따오기가 되어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단지 아름다운 동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노래와 영상으로 보고 듣는 즐거움까지 더하여 자연 생태의 보전에 눈 뜨게 하는 위업을 달성해 내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이번 동시집은 경남의 자연 생태 지역을 대상으로 자연의 소중함을 상기시키고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시적 구상을 통하여 생명의 숨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오도록, 밝은 리듬에 동화적인 색채를 깔아놓았다. 그리하여 한 편 한 편이 동화 속 세상에서 갯벌과, 나무들과 온갖 생명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환희를 만끽할 수 있다. 이는 비단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박안평 님의 동시 안에서 웅숭거리며 자연의 하나로 살아감의 기쁨을 깨우치기에 충분하다.
먼저 살펴볼 시는 <주남으로 날아와>이다. 갈빛 숲 하늘 끝에서 시작된 시선은 독자의 마음으로까지 흘러오고 있다. 시적 전개가 유려하고 자연스럽다.
갈빛 숲이 살랑 살람 바람이
길을 열면 하늘 끝에서
날개들이 주남으로 찾아와요
…
연꽃 위에 살짝 내려 숨을 고르고
쉬어가는 오늘도 웃음
머무는 이곳은 파랑이들 쉼터
훨훨 훨훨훨
…
-<주남으로 날아와>
첫 연의 살랑거림이 시의 색조를 부드러운 실루엣으로 드리우며 하늘에서 오는 손님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암시한다. 그 귀한 손님이 특별히 ‘주남으로’ 찾아온다면 주남은 또 얼마나 귀한 곳인가. 그렇다. 그 흑두루미가 연꽃 위에 살짝 내려 숨을 고르는 모습이라니, 참으로 우아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주남이 흑두루미의 집만이 아닌 것은 떼까마귀와 다른 철새들의 서식처이기 때문이다. 각종 식물과 동물이 사이좋게 공존하는 주남은 모두의 집이다. 이 모두의 집, 너희 집을 지켜줄 거라는 다짐이 있다.
<죽방 갯벌의 비밀 주머니>는 따각따각, 뽀글뽀글, 톡톡, 느릿느릿, 냠냠, 말랑말랑 등 의성어와 의태어를 사용하여 시의 입체감을 높이고 있다. 이는 갯벌의 살아있음의 생생함을 표현하고 재미를 더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커다란 갯벌을 도화지로 하고 각 생명들의 세밀화를 그려 넣음으로 아기자기한 맛을 더하고 있다. 이렇게 갯벌은 다양한 작은 생명체들의 집이 되고 이러한 작은 생명체들이 갯벌에 푸른 숨을 불어넣는 존재임을 보여주고 있다.
“따각따각, 따각따각/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요?”로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시의 문을 열고 있다. 단순해 보이는 물음이 동시의 감흥을 높이며 유연한 시적 흐름을 담보하고 있다.
이와 같이 <죽방 갯벌의 비밀 주머니>는 하나의 수수께기를 풀어내는 과정이 담긴 생명 지식을 바탕하여 시를 풀어내고 있다. 특별히 얼마나 갯벌과 미역이 사랑스러웠으면 지구가 ‘엄지 척’까지 할까. 거시적인 평가와 장면이 웃음을 머금게 한다. 지구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갯벌의 파아란 숨을 오래 함께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자연스런 감화로 푸른 숨을 지키고자 다짐하게 한다.
따각따각 따각따각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요?
소라의 숨구멍이
뽀글뽀글 열리고
단단한 껍질 집 지고
해초 사이로 쏙!
미역 숲과 넓은 갯벌은
지구가 엄지 척!
맑은 숨을 품어내는
죽방 갯벌의 비밀 주머니
톡톡 생명이 피어나요
…
-<죽방 갯벌의 비밀 주머니>
…
데굴데굴
달랑게들 진흙탕 건반을 두드려요
와글와글 방게들
실룩실룩 엉덩이를 흔들어요
쏙쏙쏙 촘촘촘
진흙대문 열어요
앗, 들켰다! 숨어라
진흙 대문 속으로 쏙!
소란스럽고 예쁜 갯벌은요
지구의 나쁜 탄소를 꿀꺽!
환경을 지키는 초록 주머니
…
-<사천만 갯벌 축제>
<사천만 갯벌 축제>에서는 ‘축제’의 의미에 맞게 달랑게 방게의 춤이 진흙탕 건반 소리에 맞춰 소란스럽다. 온몸에 진흙을 묻히고 함께 그 소란 속에서 춤을 추고 싶은 감흥이 이는 작품이다. 특별히 그 춤사위 속 발자국 소리에 대문을 열고 닫으며 숨는 장면은 숨바꼭질을 연상시키며 축제의 흥겨움을 더하고 있다. 플라스틱으로 고통받지 않고 이 생명의 축제에 이어지길 원하는 바램이 가슴 찡하게 와 닿는다.
물안개 살며시
우포를 열어요
버들잎 흔들리면
바람길이 나요
…
하얀 날개 포포야
따오기가 왔어요
…
찰랑찰랑 물결
햇살이 놀아요
-<포포야>
<포포야!>, 포포야는 우포늪이거나 따오기의 애칭으로 받아들여진다. 아니면 두 가지를 동시에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포포야!>는 다른 동시에 비하여 우아하다. 은은함이 우포늪의 조용하면서도 아늑한 깊이와 잘 어울린다.
물안개 속 우포, 버들잎이 흔들며 지나는 바람 가운데 하얀 날개 퍼득이며 긴 부리의 빨간 머리 따오기가 찾아든다. 얼마나 귀중한 광경인가.
예전엔 따오기가 흔한 새였지만 1979년 이후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그 후 40년 만에 우포늪에 다시 나타난 새이다. 자연의 회복된 후에야 다시 찾아든 새이니 다시 잃어버리는 일 없도록 자연의 숨결이 찰랑거리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따오기 한 쌍 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생명이 자라는 집’이 되어야 한다.
벚꽃 팡팡 톡톡
화포천이 웃어요
부들 솜방망이
바람에 뽀용뽀용
하늘로 날아가요
꽃바람이 그련 낸
젖은 물길 따라
봉순 할머니
은발찌 짤랑짤랑
총총총 오시네요
…
-<짤랑짤랑 봉순 할머니>
<짤랑짤랑 봉순 할머니>는 화포천 황새를 해학적으로 그려낸 유쾌한 동시이다. 벚꽃 터지는 화포천에 은팔찌 짤랑거리며 내려앉은 황새 봉순이. 먼 옛날 일본에서 발찌를 차고 와 알 낳고 손주까지 본 '봉순 할머니'는 결국 고향으로 완전히 돌아가 버렸다. 시인은 그리운 마음을 담아 “봉순아, 봉순아” 돌아오라 불러보지만, 봉순이가 떠난 자리엔 이제 황새들이 보금자리를 틀고 당당히 서식하고 있다. 봉순이를 기다리는 유쾌하고도 애틋한 해학이 화포천 생태의 새로운 역사와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꼬물이의 집>은 차분하지만 동요적 감각이 살아있는 작품이다. 꼬물이라는 단어에서 유추되는 ‘개구리와 올챙이’ 동요가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주인공은 ‘붉은발말똥게’이다. 붉은 전사 같은 각진 몸매의 ‘붉은발말똥게’가 꼬물꼬물 기어다니는 모습이 뻘밭 위 하늘 닿은 모습과 잘 어울린다. 칠면조의 일곱색깔과 도요새 고방오리 저마다의 색깔로 아름답다. 봉암갯벌의 너른 품을 헤집으며 꼬물이가 갯벌을 살아 숨쉬게 한다. 봉암갯벌의 일등공신은 ‘붉은발말똥게’다.
뻘밭 위에 하늘이
닿으면
붉은발 말똥게가
꼬물꼬물 기어나와요
…
꼬물꼬물 꼬물이
뻘 집 속에서 장난 치면
아픈 바다 살아서
휴우 휴우 숨 쉬게해요
…
-<꼬물이의 집>(봉암갯벌)
낙동강 물빛과
바다가 만나는 을쑤~ 을숙도
생명이 숨 쉬는 습지
모래섬 점점이
큰고니 노닐어요
…
- <을쑤! 을숙도>
<을쑤! 을숙도>는 을쑤, 얼쑤의 추임새는 을숙도가 생명들이 신명 나는 장소임을 상징하고 있다.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 수천 년의 퇴적층으로 만들어진 습지가 을숙도이다. 강 물빛과 바다가 만나니 얼쑤~ 큰고니, 도요새, 물떼새 한바탕의 춤사위를 벌인다. 얼쑤! 게다가 한가롭게 재첩 캐는 아낙들까지. 너울너울 춤추는 철새들의 날갯짓 푸른 생명의 터전, 새끼손가락 걸고 얼쑤! 을숙도 푸르게 지킬 것을 약속한다.
<달콤새콤 사자평>은 하늘과 맞닿아 있는 습지의 아름다움과 풍성함을 고고롭게 담아내었다. 시인의 마음 결이 산바람처럼 아름답게 한들거린다. ‘습지가 몰래 키운/ 조그만 돌베나무’는 의외스럽고 깜찍한 표현이다. 사자평 바람에 흔드리는 수만 억색들이 돌배의 새콤달콤함으로 익어간다. 미각과 시각의 아름다운 조화가 가을 햇살처럼 반짝거린다.
고산 습지
억새가
산바람에 흔들릴 때
습지가 몰래 키운
조그만 돌배나무
지구의 꿈이
파아란 하늘을 닮아가요
조롱조롱
갈빛 돌베 손을 뻗고
까만 점점
동그라미로 흔들려요
한 알 두 알
배낭에 담다 보니
사자평 바람도
배낭 속에서
까망점도 노릇노릇
달콤새콤 깔깔거려요
-<달콤새콤 사자평>
<청포만 비밀회의>는 숨바꼭질과 비밀회의가 오버랩되면서 갯벌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이는 갯지렁이, 바지락이라는 사실을 의인화법을 사용, 알기 쉽고 재미있게 구성해 놓았다. 어린아이부터 장년까지 이 재미있는 비밀회의에 참가자가 되어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이실직고,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새끼손가락을 걸며 ‘창포만’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야겠다는 결단을 하지 않을까. ‘보송보송 작은 친구들이/ 창포만의 상처를 다독이고 있는데’ 이제 우리들은 그 상처를 덧나게 해서야 될 일인가.
갯벌은 숨바꼭질 시간
바닷물이 찰랑찰랑
뻘 친구들은 비밀회의를 열어요
…
둥글게 둘러앉아
모두 모두 새끼손가락 걸었어요
“우리가 청포만을 지키자”
…
<청포만 비밀회의>
<숲의 매듭을 묶다>는 ‘팔용산 돌탑에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숲의 매듭을 묶다>는 동시라고 보기는 그 깊이와 무게가 예사롭지 않다. 무엇이라 이름하든 완성도 높은 걸작이다.
이슬도 얹고 비도 얹으며 쌓아올렸을 돌탑, 한 켜 한 켜에 뿌린 내린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은 바람의 흔적이었고, 푸른 숲마저 허리를 굽혀 경의를 표했던 부러진 이름들이었는지도 모른다. 부러짐과 온전함을 잇고, 사람과 숲을 그리고 사람과 짐승을 잇고 있는 숲의 염원이다.
…
이슬도 얹고 비도 얹으며
안개 스민 산기슭, 천기 탑
바람의 흔적이 이끼를 부르고
푸른 숲도 허리 굽혀
함께 잇는 어울림이 한 켜 한 켜 뿌리 내린다
부러진 이름들
돌탑에 새기고
그 무게가 맥박이 되어 서로를 이을 때
…
-<숲의 매듭을 묶다>
박안평 님의 이 동시들은 다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 진정 자연을 다시 숨 쉬게 하고 푸르게 자라게 하는 것은 ‘자연’임을 강조하고 있다. 단지 인간의 인위적인 파괴만 아니라면 자연은 스스로를 지키며 푸른 숨으로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그것은 인간에게 더욱 살기 좋은 삶의 질을 제공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동시로서 유쾌하고 발랄하게, 쉬우면서도 재미있게 살아있는 자연의 생명들의 숨소리와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우리 영혼마저 맑게 정화되는 듯하다. 모든 이들이 이 수준 높은 작품들을 기쁘게 누렸음 한다. 물론 큐알 코드를 통해 영상으로 본다면 생명들의 축제를 함께 즐길 수 있다.
박안평 시인은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시인, 수필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이다. 거기다가 시낭송가로서는 이미 그 이름을 떨치고 있는 바이다. 박안평 님에 이르면, 시낭송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시낭송을 하면서 AI로 제작된 영상을 배경 화면으로 띄움으로써 목소리만으로 미처 전달하지 못하는 깊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제는 평면적인 시대는 지났다. 3D프린터로 인간의 장기까지 복제하는 시대. 삶, 산다는 인식의 차원을 새롭게 제고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러한 때 무엇 하나 시험받지 않고 도전받지 않는 것이 있을까. 밤낮으로 밀양과 서울을 종횡무진으로 오가는 그에게 있어 AI시대인들, 사물인터넷 시대인들 어찌 막힘이 되겠는가. 오히려 그에게는 길이 될 뿐이다.
그러면서도 자연 친화적 마음의 정서를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으니, 박안평 님의 저작은 고전과 현대의 조우로서, 기존 ‘문학’에 대한 편견을 깨고 문학적 예술의 지평을 넓혀가는 진정 새로운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