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재실이다(7남매가 마음 모아 지은 아버지의 유언)
제상보에 스며든 시간
지난 7월, 부모님 제사상을 거두며 제상보를 들어 올렸을 때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흰 무명천은 어느새 누런 빛으로 얼룩 얼룩 변해 있었고
생선 기름과 음식 기름이 천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다.
해마다 차려지는 제상 위에서 조상님들을 모시며
묵묵히 제 역할을 해온 천 한 장
그 안에는 우리 가족의 정성과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몇 년 전 사진을 들추어 냈다 5형제 나란히
창원 집으로 가져온 제상보를 커다란 대야에 담그고 오래오래 불렸다.
물은 금세 누런 빛으로 변했고
나는 여러 번 물을 갈아가며 정성스럽게 빨았다.
때를 벗겨내듯 제상보를 씻어내는 동안
마치 지난 세월을 정돈하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깨끗해진 제상보를 햇볕에 말렸다.
부모님 슬하 60명이 넘는 자손들의 번창였다
빈 집의 소리 듣다
몇 개월 후
시간을 내어 친정을 찾았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달라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나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던 마당이 낯설게 느껴졌다.
집을 지키시던
셋째 오빠는 세계보석명인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받으신 분이다.
제사를 모신 후 "나이지리아"로 가신 지 벌써 몇 개월째다.
보석 세공의 기술을 전수하러 가신 길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러 가신 길이었지만
그 부재의 시간이 고향집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오빠는 재실과 본가를 정성스럽게 관리해 오셨다.
정원의 나무 한 그루
화단의 꽃 한 송이까지 세심하게 가꾸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을 심으시고
처마 밑을 깨끗이 쓸어내시고
대청마루를 윤이 나게 닦으시던 오빠. 그제야 깨달았다.
오빠의 그 손길이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를
부산에 계시는
둘째 오빠가 가끔씩 들러 관리를 하시지만
거리가 있다 보니 자주 오시기는 어렵다.
재실 마당의 잡풀은 그 틈을 비집고 밤낮을 모르고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아버지의 소원, 7남매의 마음
우리 재실은 종중 재실이 아니다.
우리 7남매가 고인이 되신 아버지의 소원을 풀어드리고자
정성을 모아 지은 곳이다.
평생을 자식들만 바라보며 사셨던 아버지.
"언젠가 우리 조상님들을 제대로 모실 수 있는 재실을 갖고 싶다"고 하시던
그 바람을 우리는 잊지 않았다.
"언젠가 우리 조상님들을 제대로 모실 수 있는 재실을 갖고 싶다"
본문 중에서
7남매가 한마음으로 십시일반 힘을 모아 재실을 지었다.
설계도를 보며 의견을 나누고
기둥을 세우고, 기와를 올리던 날들.
그 과정 하나하나가
아버지를 향한 우리의 사랑이었고
우리 형제자매를 하나로 묶는 끈이었다.
생가
어느덧 재실을 지은 지 30년이 훌쩍 넘었다.
그 세월 동안 이곳에서 우리는 조상님들을 모셨고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여 웃고 떠들었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뛰놀았고,
어른들은 대청마루에 둘러앉아 옛이야기를 나눴다.
재실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역사이자 정신이 깃든 공간이었다.
집이 숨 쉬는 방법
"집은 사람의 입김을 불어넣어야 함께 숨을 쉰다."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말없는 건물도 사람의 손길이 닿고
사람의 발소리가 울리고
사람의 온기가 채워질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집이 된다는 뜻이리라.
"집은 사람의 입김을 불어넣어야 함께
숨을 쉰다."
본문 중에서
그 말이 이렇게 절실하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고르지 않은 세월의 호흡 속에서도
셋째 오빠가 고향을 지켜주셔서 우리는 든든했다.
멀리 떨어져 사는 형제자매들은
마음 한편으로 늘 안심할 수 있었다.
'오빠가 계시니까 괜찮겠지.'
그런데 오빠가 몇 개월 비웠을 뿐인데
집안은 온통 달라져 있었다.
거미줄이 처마 끝에 늘어져 있었고
마당 한구석에는 때이른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화단을 뒤덮은 잡풀
닫힌 문틈으로 들어간 먼지들
집은 사람의 부재를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자연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질서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우리가 잠시라도 손을 놓으면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제상보를 헹구다/박서현(10월에 쓴 시)
지도를 거품이 갉아 먹었다
석 달 전 모셨던 제사상
기름기 누렇게 번져 간 제상보를 씻었다
물에 불렸더니
어머니의 어머니 이야기가 소용돌이쳤다
여름 한 철을 지나 다시
문턱을 넘었다
아래채 제기 위에
까슬까슬한 기억을 가지런히 두었더니
빨랫물 속 어머니가 재실 마당까지 번졌다
마당에 웅크리고 앉아
풀을 뽑고 계셨던 어머니
"우째 왔노, 돌아서면 또 풀이 움북하다, 아이가"
잔디 한켠에서 흐려지던 한 마디를
나는
아직도 붙들고 있다
일부러 생가를 그대로 살렸다
제자리로 돌아온 제상보
씻어온 제상보를 품에 안고 재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랫채 제기를 보관하는 장 위에
제상보를 조심스럽게 펼쳐 놓았다.
깨끗해진 흰 천이 어둠침침한 방 안에서 유난히 하얗게 빛났다.
다음 제사 때
이 천은 다시 상 위에 펼쳐질 것이다.
그 위에 제기가 놓이고
음식이 차려지고
우리는 또다시 고개 숙여 절을 올릴 것이다.
그렇게 계절은 돌고, 시간은 흘러가고, 우리의 전통은 이어진다.
위 7남매에 대한 시를 썼다(박안평은 본명 필명으로 활동 중(서현)
그늘 한 뿌리 /박서현(7남매를 두고 쓴 시)
볏짚 덧댄 지붕
앞마당에 감자 한 알 심었네
문고리 삐걱이는 작은 방 안
연두가 오글거렸지
책 한 권씩 꺼내 소지 종이 올리며
달집에 소원 빌던 어머니
한 뿌리 그늘의 손금이
일곱 무늬를 지문마다 새겼네
아들 다섯
엄지는 손바닥에 굳어진 먹물 향으로 별자리를 으깨던 석천 서예가,
집게는 고추비닐하우스 속 땀 포자 터뜨리며
동생들 학비를 마련한 매운 부동산 석사,
중지는 남달리 그렸던 숲속 산딸기 잉걸불로 데려와 홍보석에 훈수를 둔 세계 보석 명인,
약지는 똑딱이 시계추 떼어내고 주판알에 기름을
튕기며 허밍을 부르던 은행원,
새끼는 바다의 물고기밥 될지라도 빚 한 짐 바다에 던져버린 엄니의 등대 항해사,
새끼는 꿈에서 엄니의 빚 갚아준 효도에 그 아이 둘, 의사와 검사로 자랐지.
딸 둘
큰딸은 글자의 습지를 품어 햇살을 끌어안은
푸른 피리 보육학사
작은딸은 돌림앓이 견딘 손끝에서 줄 장미 가시로
글을 쓰는 시인, 공학석사
오래 묵은 장난감 같은 방에서 일곱 손가락은 몸을 구기고 손끝은 시계 바늘이었어.
삶의 실밥을 물고 모닝커피를 끓였어.
손톱 반달은 아이들이 또 아이를 낳고
달에서 뻗어나는 푸른 줄기의 촉수들.
형제봉 자락을 헤치며
감자 줄기에서 딸려 나온 튼실한 감자들.
소지 불꽃 속 두 손의 기도
어머니의 깊은 그늘 하나.
7남매에 대한 나의 시
마을 입구 보리포구 열매가 울 형제들의 형제 같이 조롱조롱
집은 기다릴 줄 안다
재실을 나와 본가로 향했다.
오래된 우리들이 자랐던 집이고 대를 이어 오빠가 살림하시던 집이다.
대문을 열자
오빠의 손길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현관에 가지런히 놓인 화분들,
거실에 정갈하게 놓인 가구들,
손님접대를 하던 야외 찻집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몇 개월째 주인을 기다리며 멈춰 있었다.
오빠는 아기자기한 취향을 가진 분이다.
작은 소품 하나도 의미를 부여하며 정성껏 배치하셨고,
계절마다 집안 분위기를 바꾸는 재미를 아셨다.
창가에 놓인 작은 도자기,
벽 위쪽에 걸린 세계 명인의 수많은 액자들 속에
국위선양도 포함된 듯하다
할머니의 사진부터 우리 가족가진과 함께 오빠의 이야기를 끝없이 담고 있었다.
손길이 끊긴 본가와 재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묘한 쓸쓸함이 밀려왔다.
이 쓸쓸함을 어떻게 표현할까. 한 편의 시에 담고 싶었다.
어머니!!!! 그립습니다.
엄마가 쓰러지신 그 자리
재실 마당으로 다시 나왔다.
무성한 잡풀 사이를 걸으며 풀을 뽑기 시작했다.
뿌리가 깊게 박힌 풀들을 힘껏 잡아당기다가, 문득 그날이 떠올랐다.
한여름이었다.
엄마는 이 마당에서 잡풀을 뽑고 계셨다.
뜨거운 햇살 아래서, 땀을 흘리며, 허리를 굽혀
"집은 사람 손이 가야 해. 조상님들 모시는 곳인데 어찌 이렇게 놔둘 수 있겠어?" 하시며
묵묵히 일하시던 엄마
그날, 엄마는 이곳에서 쓰러지셨다.
"집은 사람 손이 가야 해.
조상님들 모시는 곳인데 어찌 이렇게 놔둘 수 있겠어?"
구급차가 오고, 병원으로 옮겨지고, 우리 자식들이 급히 달려갔지만
엄마는 결국 다시 일어나지 못하셨다.
그렇게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어쩌면 엄마가 마지막으로 일하시던 그 자리일지도 모른다.
손에 쥔 풀잎이 눈물에 흐릿하게 번졌다.
인생무상
이 네 글자가 가슴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우리는 모두 떠나간다.
사랑하는 사람도, 익숙한 공간도,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도
결국 시간 속에 흩어진다. 하지만 동시에 깨달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지금 이 손길을
지금 이 마음을 더 소중히 해야 한다고
다시 피어날 봄을 기다리며
오빠가 돌아오시면 본가와 재실은 다시 예쁘게 가꿔질 것이다.
잡풀은 뽑히고, 화단에는 꽃이 심어지고, 마당에는 빗자루 소리가 울릴 것이다.
대청마루는 다시 윤이 나고, 처마 끝은 깨끗해지고, 집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할 것이다.
좋은 일로 가신 오빠의 여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나이지리아 땅에서 우리의 전통 보석 세공 기술을 전하시고
문화의 가교가 되어주시고, 무사히 돌아오시길
그리고 돌아오시는 날
우리 모두 이곳에 모여 오빠를 환영하는 자리를 마련해야겠다.
오빠가 그토록 아끼시는 이 재실에서, 오빠가 정성껏 가꾸신 이 본가에서
발걸음을 돌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석양빛에 물든 재실이 고즈넉하게 서 있었다.
30년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온 그 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의연해 보였다.
집은 기다릴 줄 안다.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또 다른 계절이 올 때까지
우리도 기다린다.
다시 웃음소리가 가득할 그날을, 다시 온 가족이 둘러앉을 그날을
다시 이곳에 생기가 돌아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