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2026-07-14

2026/7/11 일 밀양무안 농협 강의 내용

— 석해균 선장님의 이야기 —청소년 문학집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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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 그리고 갈림길

"빨리 대피소로 대피하라"는 다급한 외침 속에서, 기관사가 다가와 물었다.

"선장님, 엔진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때 배는 동남쪽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육지에서 점점 멀어질 뿐이었다. 나는 급히 해도를 펼쳐 확인했다. 동쪽으로 방향을 틀면 인도가 가까워진다는 걸 알았다.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뱃머리를 동쪽으로 돌려라!"

그러고는 선원들을 다그치며 소리쳤다.

"빨리 대피 장소로 가자!"

대피 장소에 도착해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문을 잠그기 전에, 아직 오지 않은 선원이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 했다. 한번 안에서 문을 잠가버리면, 밖에 남은 사람은 다시는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었다.

"빨리 타라!"

나는 외쳤고, 그제야 마지막 선원이 뛰어 들어왔다.

선원 21명, 대피소에 숨다

당시 선원 구성은 한국인 8명(선장 포함), 인도네시아인 2명, 미얀마인 11명, 모두 합쳐 21명이었다. 모두가 도착한 것을 확인한 뒤,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지금처럼 정해진 대피 장소가 있던 게 아니었다. 우리가 그때그때 임의로 정한 곳이었다.

밖에서는 열 수 없도록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숨죽인 채 대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적들이 배 위로 다 올라온 듯했다. 그들이 실내를 뒤졌지만 선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선원 침실 문은 전부 자동으로 닫히는 구조였다. 문이 닫혀 있으니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해적들은 문을 열지 못하자 그 자리에서 총을 쐈다. 우리가 숨은 곳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였다. 조금만 잘못됐어도 총에 맞았을 상황이었다.

그때는 외부로 연락할 통신 수단이 전혀 없었다. 지금은 모든 선박에 갖춰져 있지만, 이 사건 이후에야 법적으로 설치가 의무화됐다. 당시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맨홀 뚜껑, 위기의 시작

총소리는 계속 울렸다. 우리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지만, 숨어 있는 곳이 결코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배 안에는 밖에서도 열 수 있는 통로가 하나 있었다. 직경 약 1m 크기의 맨홀 뚜껑이었다. 볼트만 풀면 열리는 구조였다.

평소 선원들도 그 통로로 오르내렸고, 출항 전에는 외부 갑판의 로프를 그 구멍을 통해 아래로 내려보내곤 했다. 우리는 바로 그 아래에 숨어 있었다. 밖에서는 고리에 볼트만 채워져 있을 뿐, 안쪽은 그저 로프로 대충 묶어 놓은 상태였다. 흔들면 덜렁거릴 정도였다.

해적들은 실내를 아무리 뒤져도 나오는 게 없자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그 맨홀 뚜껑이었다. "저기다." 그들이 뚜껑을 붙잡고 열려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우리는 그저 숨을 죽인 채 가만히 있었다.

총성과 함께 열린 문

문이 열리지 않자 해적들이 포기하고 돌아가는가 싶었다. 그러나 4~5분 후, 위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기관실에 있던 대형 함마를 가져온 모양이었다. 함마질이 계속되자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 틈으로 쇠막대를 집어넣었다. 조금씩, 조금씩 밀어 넣을 때마다 틈은 더 크게 벌어졌다. 그다음 그 틈으로 들어온 것은 총구였다. 총성이 울리는 순간, 팽팽하던 로프가 끊어지며 문이 열렸다.

그 틈을 통해 해적 셋이 들어왔다. 한번 들어오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총을 든 그들 앞에서 우리는 무기 하나 없이 맨몸이었다. 그들은 곧바로 선원들을 집합시켰다.

"선원 다 있나?"

"다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꼬리야, 꼬리야" — 해적이 좋아하는 나라

"알았다" 하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옆에 있던 해적 하나가 계단을 오르며 갑자기 소리쳤다.

"야, 케냐들아!"

"너 국적이 어디냐?"

"코리아."

다시 물었다.

"코리아."

그러자 이 해적은 총을 치켜들고 외쳤다.

"코리아! 코리아!"

너무 이상해서 물었다.

"너 왜 코리아라면 그러노?"

그들은 한국 배를 좋아한다고 했다. 한국도 좋아한다고 했다. '미친놈 아이가' 싶었다.

"너희가 왜 한국 사람을 좋아하노?"

"한국 사람은 우리하고 대화가 잘 통한다."

처음에는 그 말뜻을 몰랐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유가 있었다. 내가 탄 배는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아홉 번째 한국 선박이었다. 여덟 번째까지는 전부 돈으로 해결했다. 내 바로 앞 사건 때는 협상금으로 세계 최고액을 지불했다. 당시 다른 나라 배들은 그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주고 풀려났는데, 한국 배는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을 내놓았다. 그러니 해적들이 한국을 좋아할 수밖에.

브릿지 접수

다른 나라 배 두 척을 잡는 것보다 한국 배 한 척을 잡는 게 낫다는 소리였다. 참 골치 아픈 노릇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브릿지로 올라갔다.

올라가니 해적 두목과 부하가 기다리고 있었다. 선원들은 이미 한쪽 코너에 몰아넣은 상태였다.

"지금부터 이 배는 우리가 접수한다. 모든 선원은 우리 지시에 따르고, 개인 침실이든 어디든 이동할 때는 반드시 우리 허락을 받고 동행하라."

이제 모든 게 그들 뜻대로였다. "알았다" 하고 자리에 앉았다. 서너 명이 감시하는 가운데 40~50분쯤 지났을까, 해적들의 모선이 눈에 들어왔다. 해적질을 할 때 싣고 다니는 작은 스피드 보트와는 별개로, 본거지 역할을 하는 모선이 따로 있었다. 해적 3명이 그 모선으로 건너간다고 했다.

3명이 사라지다

"왜 건너가나" 궁금해 밖으로 나가려 하자 제지당했다.

"너는 나오지 마라. 안에 있어라."

"너희들 안전을 내가 체크해야 되는 거 아니냐."

아무 대꾸도 못했다.

3명이 목숨을 걸고 모선으로 건너갔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모선은 돌아오지 않았다. 17명 중 3명, 결코 작은 비중이 아니었다. 왜, 왜, 왜 — 물음표만 계속 붙었다.

그때 두목이 나를 불렀다. 해적질에 쓰던 스피드 보트를 본선에 실어달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갑판장에게 지시해 실어주었다. 다 싣고 나자 두목이 말했다.

"소말리아로 가자."

가자면 가야 했다. 총구 앞에서 다른 선택은 없었다.

기관실로 내려가지 않는 해적들

당시 엔진은 이미 정지된 상태였다. 해적들이 정지시켜 놓은 것이었다. 엔진을 다시 가동하려면 선원들을 기관실로 내려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내려보내라."

기관장을 불러 지시했다.

"기관실로 내려가라."

그리고 해적들에게도 말했다.

"너희들은 배 안 길을 모르니 우리 선원들과 같이 내려가라."

그런데 그들은 함께 내려가지 않겠다고 했다. 선원들만 내려보내라는 것이었다. 이상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그래도 대답은 같았다. 선원들만 내려보내라고.

이상한 일이었다. 처음 두목이 나에게 했던 말이 있었다. 침실에 갈 때도 동행하라고 했던 그 지시. 그런데 기관실에는 선원들만 내려보내라니, 앞뒤가 맞지 않았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태도였다.

"알았다."

결국 선원들을 먼저 내려보내고, 기관장을 따로 불렀다.

"기관실에 내려가면 절대 엔진에 손대지 마라. 엔진 컨트롤룸에 도착하고 10분 후에 나한테 전화만 해라."

"기회는 만드는 것이다"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 완전히 끊길 것이었다. '지금 빨리 연락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벌떡 일어나 이메일을 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는데, 문득 예전에 읽은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기회는 가만히 있으면 옵니까? 절대 안 옵니다. 기회는 본인이 만들고 본인이 찾아야 됩니다. 기회는 기다리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그 순간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브릿지에 있는 내 사무용 책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 위에는 늘 가지고 다니던 노트북, 외부와 연결되는 그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앉아라! 왜 일어나냐?"

해적이 소리쳤다.

"지금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니다. 좀 심란하다."

바둑에서 이메일로

"마음을 좀 다스려야겠다. 저기 내 책상 보이지? 컴퓨터로 가서 오락 좀 하겠다."

"안 된다."

"야, 연습 좀 하자."

나는 밀어붙이듯 다가가 그대로 자리에 앉아버렸다.

배에 오를 때마다 나는 늘 바둑 CD를 챙겨 다녔다. 아주 기초적인 프로그램이었지만, 내가 쓰는 컴퓨터에는 항상 그것을 깔아두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 바둑 게임을 꺼냈다.

'누가 뭐라 하든 나는 하겠다.'

그렇게 마음먹고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잠시 후 감시하던 해적 두 명이 다가왔다.

"뭐 하노?"

"바둑 둔다. 너도 한번 해볼래?"

가만히 지켜보던 그들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바둑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저 지루한 게임일 뿐이었다. 잠시 구경하던 그들은 결국 자리를 떠났다.

그들이 사라지자마자, 나는 화면을 바로 바꿔버렸다. 바둑판 대신 이메일 창을 열었다. 그리고 해군과 국제 에이전트에게 다급히 연락을 넣기 시작했다.

답장이 오다

이메일을 사방으로 뿌렸다. 현재 납치된 상태를 알리는 내용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선장님, 소말리아 도착을 최대한 지연시켜 주십시오."

그게 내 마음대로 될 일인가. 그럴 수 없었다.

그사이 엔진은 여전히 시동이 걸리지 않고 있었다. 두목이 기관장을 찾아가 다그쳤다.

"엔진이 왜 아직 안 되나?"

"곧 될 겁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그러자 두목이 총구를 들이대며 말했다.

"소말리아로 갈래, 죽을래?"

가야 했다. 별 수 없었다. 나도 처음엔 겁이 났다. 갈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다. 하지만 어떻게든 시간을 끌 방법을 찾아야 했다.

"엔진을 모른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다시 기관실에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기관장이 전했다.

"저들이 자기들은 엔진을 모르겠으니, 우리한테 직접 와서 체크해 보라고 합니다."

나는 그 말에서 허점을 잡았다.

"너희들이 엔진을 정지시켰잖아. 엔진을 모르면 절대 정지시킬 수 없어. 선박 엔진은 자동차와 달라서, 순서가 훨씬 복잡해. 엔진을 알아야만 정지시킬 수 있다."

그런데 두목은 대뜸 자기들은 엔진을 모른다고 했다. 정지는 시켰는데 모른다니,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가 정지시켰는가. 답은 하나였다 — 모선으로 건너간 뒤 돌아오지 않은 그 3명, 그들이 엔지니어였던 것이다. 지금 배에 남은 해적들 중에는 엔진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쏘고 싶으면 쏴라"

"그럼 엔진 수리는 누가 해야 하나?"

그러자 두목이 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죽여라!"

설마 정말 죽이겠나 싶었다. 하지만 겁도 났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스쳤다. 어느 조직이든 두목은 위험한 최전선에 나서지 않는 법이다. 게다가 선박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영역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안에서는 선장이 곧 최고 책임자였다. 함부로 죽일 수 없었다. 만약 죽인다면, 그건 국제법상으로도 큰 문제가 될 일이었다.

그래서 말했다.

"내 말이 사실이다. 정 쏘고 싶으면 쏴라."

두목이 잠시 움찔하더니 멱살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 '말을 잘못했나' 싶었지만, 이제 와서 번복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을 상황이었다. 끌려 나가면서도 겁은 났다. 선원들에게는 미리 일러두었다.

"밖에서 총소리가 나도 절대 엔진을 스타트하지 마라. 알겠나 안 알겠나 핑계 대라."

밖으로 나가니 해적 두 명 정도가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이 다시 물었다.

"소말리아 갈래, 죽을래?"

"지금 수리하고 있으니 좀 봐줘라."

한참을 버티다 마지막으로 말했다.

"정 쏘고 싶으면 쏴라. 대신, 선장이 죽으면 이 배는 절대 못 움직인다."

해적들은 배를 몰 줄 몰랐다. 두목도 그 말에 생각이 많아진 듯했다. 결국 엔진을 돌리기로 했다. 시간을 너무 오래 끌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적당히 버티다가, 결국 엔진을 돌렸다.

위험 회전수, 레드존을 이용하다

배 엔진은 자동차와 달라서 RPM을 서서히 단계별로 올려야 한다. 1단계는 매우 느리게 시작해, 해상 속력으로 치면 시속 7~8노트 정도였다.

대형 엔진에는 반드시 신속히 지나가야 하는 '위험 회전수' 구간이 있다. 한국말로는 위험 회전수, 영어로는 크리티컬 RPM(Critical RPM), 선박에서는 흔히 '레드존'이라 부르는 구간이다. 그 구간에서 오래 운전하면 엔진이 고장 난다. 이 배의 1단계 위험 회전수는 60에서 67 사이였다. 그 구간은 계기판에 빨간색으로 표시돼 있었다. 40에서 다음 단계인 80으로 넘어갈 때, 그 사이 60~67 구간은 스치듯 빠르게 지나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 순간 떠올랐다. '이거다.'

"계속 올려라" 하는 재촉에 나는 회전수를 올리는 척하며 일부러 63에 맞춰 세워두었다. 위험 구간, 절대 오래 두면 안 되는 그 지점이었다. 그대로 두자 곧 진동과 소음이 크게 일었다. 배가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해적들이 놀라 달려왔다.

"왜 이러노?"

"엔진이 이상해진 것 같다. 내려야 된다."

회전수를 내리면 59에서도, 68에서도 조용해졌다. 문제는 오직 60에서 67, 그 구간뿐이었다.

잠시 후 다시 말했다.

"내가 다시 한 번 올려볼게."

또 63에 맞춰두었다. 같은 진동과 소음이 반복됐다. 이렇게 세 번을 되풀이했다. 세 번째에 내가 물었다.

"안 되겠다."

그러자 해적들이 말했다.

"그럼 내려서 가자."

결국 정상 속력인 6~7노트로 항해를 시작했다. 조류를 잘못 받으면 배가 밀려날 수도 있는 속도였다.

180도 vs 320도 — 나침반을 속이다

항해가 시작되자 두목이 물었다.

"어디로, 몇 도로 갈 거냐?"

"그냥 소말리아로 가자."

나침반 코스로 180도는 정남향이었다. 처음엔 선수를 180도로 돌렸다. 그렇게 얼마간 항해하다가, 해적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 배를 몰래 320도로 돌려버렸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방향이었다. 나침반 계기 자체를 조작해, 밖에서 보기엔 180도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320도로 가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거의 하루를 항해했다. 하지만 너무 오래 끌 수는 없었다. 육지가 눈에 들어올 즈음, 다시 180도로 되돌렸다.

다음 날 아침 9시쯤, 다시 180도로 항해하던 중 두목이 나를 불렀다. 멀리 군함 한 척이 보였다.

"저거 코리아냐? 내려라."

"모른다."

"코리아 맞다."

이미 나는 VHF 무선을 통해 상황을 알고 있었다. 해적들은 배에 올라타기만 하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인질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항해를 이어가던 중, 5~6마일 밖으로 몽골 국적의 대형 상선 한 척이 지나갔다. 약 5만 톤급의 배였는데, 짐을 싣지 않은 공선이라 흘수선이 높게 떠 있어 눈에 잘 띄었다. 두목이 그 배를 발견하고 또 나를 불렀다.

"도와달라" — 두 번째 납치 시도

두목이 다가와 말했다.

"할 수 있다. 도와달라."

"뭘 도와줘?"

해적들의 스피드 보트는 이미 본선에 실려 있었다. 그걸 다시 내려달라는 것이었다. 선원들을 시켜 보트를 내려주었다.

납치조가 몇 명이나 타는지 유심히 살폈다. 5명이 탔다. 그럼 본선에는 몇 명이 남는가. 8명이었다. 한국 선원과 1대1 비율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총이 있었다. 1대1로는 승산이 없었다. 다만 5명 정도로 줄어들면 덮치려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절대 무리해선 안 됐다. '기다려라', 스스로를 다잡으며 기회를 노렸다.

해적들의 보트가 다른 배를 향해 출항했다. 그러자 두목이 다시 다가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저 배 납치에 성공하면, 우리는 전부 다 철수한다."

정말로 성공하면 떠난다는 것이었다. 속으로 빌었다. '제발 성공해라.' 나뿐 아니라 그 상황에 놓인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렇게 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배 속력을 걸고 벌인 심리전

두목이 또 요구했다.

"배 속력을 좀 올려달라."

절대 안 될 일이었다. 나는 일부러 크게 반응하며 버텼다.

"안 된다. 속력 올리면 고장 나는 거 몰라?"

"한번 해봐라. 고장 나면 우리가 너희 데리고 소말리아 가서 수리하면 될 거 아니냐."

"안 된다."

그렇게 딱 잘라 거절하고 돌아서는데, 문득 예전에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정확히 어느 책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문장이었다.

위기가 닥쳤을 때는 상대방의 요구를 역이용하라.

혼자 곰곰이 생각하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두목을 불러 대원 7명을 모두 불러오게 했다. 두목까지 8명을 세워두고 말했다.

"지금 너희 두목이 자꾸 속력을 올려달라고 한다. 올리면 고장이 발생할 수도 있다. 확실하진 않지만, 그래도 올릴까?"

세 번을 물었다. 8명 모두 그래도 올려달라고 했다.

"그럼 한번 시도는 해볼게."

사실 지금 엔진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올려도 문제 될 게 없었다. 해적들이 보지 않을 때, 몰래 속력을 절반 정도만 살짝 올려주었다.

1차 해군 교전

납치는 실패했다. 상대 배는 이미 연락을 받고 대비하고 있었고, 공선이라 뱃전이 유난히 높아 사다리로 올라탈 수 없었다. 해적들이 돌아오려던 순간, 우리 해군과 첫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것이 1차 작전이었다.

해적들의 보트 조종 실력이 워낙 뛰어나 해군이 끝까지 나포하지 못했다. 문제는 그들이 결국 본선으로 다시 올라와야 한다는 점이었다.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순간 바로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해적 두목이 갑자기 실내로 들어가더니 흰색 시트 커버를 가지고 나왔다. 그것을 막대에 둘둘 감아 즉석에서 백기를 만들었다. 그 백기를 흔들며 사격 중지를 요청했다. 그 틈에 해적 5명이 서둘러 배 위로 올라왔다. 그중 2명은 끝까지 총을 메고 올라왔고, 3명은 총을 챙기지 못한 채 올라왔다.

해적들이 배에 오르자마자 백기는 그대로 버려졌다.

그 교전으로 우리 해군 몇 명이 다쳤다. 해적들은 단 한 명도 다치지 않았다. 잃은 것은 보트와 총 몇 자루뿐이었다. 배는 다시 소말리아 방향으로 향했다.

비상 연료 차단 밸브

저녁이 되었다. 다시 움직여야 할 때였다. '위기 시에 상대방의 요구를 역이용하라'는 그 문구를 되새기며, 해적들을 불러 세웠다.

저녁 식사 시간에 1등 기관사를 불렀다.

"식사하러 올라오세요."

식사를 마치고 기관실로 내려가면서, 나는 그에게 몰래 지시했다.

"기관실에 있는 비상 연료 차단 밸브를 잠가라."

선박이든 군함이든, 물 위를 움직이는 모든 배에는 국제 규정상 반드시 비상 연료 차단 밸브가 있다. 이것이 없으면 배 자체가 운항할 수 없다. 1등 기관사는 식사를 마친 뒤 몰래 그 밸브를 잠갔다. 밸브를 잠그면, 파이프라인 안에 남아 있던 기름이 10분쯤 지나 전부 소진되고, 자연히 엔진이 멈추게 된다.

엔진이 멎으면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은 언제나 선장이었다. 두목이 나를 불렀다.

"엔진이 왜 정지됐나?"

"모르겠다. 기관실에 가서 알아보겠다."

물론 모를 리 없었다. 내가 직접 지시한 일이었다. 기관실에 전화를 걸어 말했다.

"내 지시 있을 때까지 절대 손대지 마라."

두목에게는 이렇게 둘러댔다.

"연료가 떨어졌다. 아까 속력을 올려서 그렇다. 속력 올리면 고장 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낮에 너희들도 그랬잖아. 몇 번이나 경고했나. 세 번이나 말하지 않았나."

일부러 큰소리를 치며 몰아붙였다. 두목은 오히려 미안한 기색을 보이며 수리하라고 했다. 하지만 수리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연료 보급이 안 되는 상황에서 정말로 손볼 것은 없었다. 기름때 묻히기 싫은 척, 전기 모터를 뜯었다 붙였다 하며 시간을 끌었다.

밤 12시가 되자 선원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더 이상 못하겠다. 자고 내일 하자."

협상 결렬, 그리고 위협

다음 날 아침, 배 안 분위기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두목이 찾아와 말했다.

"캡틴, 협상하자. 딜 하자."

이제 더 물러설 곳이 없구나 싶었다. 그런데 두목이 요구한 것은 뜻밖이었다.

"한국에 전화해서, 우리가 지금 여기서 준비하느라 돈을 좀 썼으니 1억 원만 더 보내달라고 해라. 계좌번호를 불러줄 테니 적어라."

거절했다.

"내가 지금 이 처지에 어떻게 한국에 전화를 하나. 그런 전화는 못한다. 대신 약속하마. 너희들을 안전하게 소말리아로 보내주겠다. 본선 보트를 내줄 테니 그걸 타고 가라. 소말리아까지 우리 해군이 호송해주도록 하겠다. 그건 내가 책임지겠다."

두목이 물었다.

"그럼 무슨 돈이 필요한가."

"여기서 활동 준비하느라 돈이 많이 들었다."

"그런 돈까지 우리가 대줘야 하나. 못한다."

협상은 그렇게 깨졌다. 그때부터 해적들은 계속 소말리아 쪽으로 전화를 걸었다.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나는 계속 수리하는 척 시간을 끌었다.

그러던 중, 두목이 등 뒤로 다가온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순간 총 개머리판이 어깨를 세게 내리쳤다. 그 충격에 그대로 쓰러졌다.

그 뒤로 한동안 거친 시간이 이어졌다. 태어나서 그렇게 힘든 순간은 처음이었다. 정신이 흐릿해지는 걸 느끼며 애써 버텼다.

두목이 다시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캡틴, 지금 즉시 엔진 복구하고 소말리아로 가자."

"수리하고 있지 않나."

"우리는 다 안다."

해적들이 소말리아 쪽과 계속 통화하며, 본선 캡틴에게 속고 있다는 지시를 받은 모양이었다. '캡틴을 족쳐라'는 명령이었다. 그래도 나는 모른 척했다. 여전히 고장이다, 수리 중이다 버텼다.

두목이 총구를 겨누며 말했다.

"죽을래, 살래?"

그 순간 정말 위험할 수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손을 든다면, 지금까지 버텨온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것이었다. 그건 절대 안 될 일이었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말했다.

"너희가 정말 내 말을 못 믿겠다면, 마음대로 해라."

"니 마음대로 해라"

"나가자."

그 순간 정말 각오를 했다. 끌려 나가기 전 선원들에게 다시 지시했다.

"이번엔 총소리가 날 것 같다. 총소리가 나도 절대 엔진에 손대지 마라."

밖으로 나가니 또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소말리아 갈래, 죽을래?"

이런저런 말로 버텨보다가, 결국 주장을 내려놓았다. 그들과는 영어로 대화하던 중이었다. 나는 그 상황의 결정권을 그들에게 넘겨버렸다.

"It's up to you."

니 마음대로 해라, 그런 뜻이었다.

"쏘고 싶으면 쏘고, 니 마음대로 해라."

그러며 그대로 몸을 내밀었다.

두목이 한참을 생각하더니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 그 짧은 순간, 살아온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알 수 없었다. 여기가 지옥인지 천국인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눈을 떴을 때, 앞에 선 두목은 총구를 아래로 내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살아 있구나' 싶었다.

두목은 나를 브릿지 뒤편의 창고에 가두었다. 부하 둘을 감시로 세웠다. 이제 나는 그들에게 '가치 있는 인질'로서만 갇혀 있는 신세였다.

잠시 후 엔진 소리가 들렸다.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목숨 걸고 버텨온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소리였다. 혼자 중얼거렸다.

'개새끼들.'

감시하던 해적이 말했다.

"니가 범인이다. 소말리아 가면 죽는다."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이제는 흐름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배는 계속 나아갔다. 다만 전속력은 아니었다.

화장실에서 쓴 쪽지

저녁이 되자 두목이 다시 나를 브릿지로 데려갔다. 선원들은 왼쪽으로, 나는 오른쪽 창가로 자리가 정해졌다.

"지금부터 말은 하지 마라."

해적 한 명이 24시간 나를 감시했다. 지나가는 해적마다 같은 말을 던졌다.

"너는 소말리아 가면 죽는다."

배는 계속 나아가고 있었다. 답답했지만 멈출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말을 할 수 없으니, 옆에 있던 책의 한 장을 찢고 굴러다니던 연필을 주웠다.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감시자에게 말한 뒤, 안에서 문을 잠그고 종이에 적었다.

내용은 이랬다 — 현재 연료 탱크에 있는 빌지(선박 바닥에 고인 기름과 물이 섞인 폐수, 대부분 회수 가능한 상태였다)를 사용 중인 연료 탱크로 옮기라는 지시였다. 구체적인 이송 방법까지 상세히 적었다.

자리로 돌아가려면 선원들 앞을 지나야 했다. 지나가면서 슬쩍 쪽지를 건넸다. 그러고는 기다렸다. 어려운 일은 아니니 해줄 거라 믿었다.

그때 절실히 깨달은 것이 있었다.

학습보다 실행이 중요하다.

아무리 책상에서 공부를 잘해도, 실제로 실행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반대로 책상에서는 다소 부족해도 실행을 잘하는 사람이 결국 인정받는다.

한참 후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선장님, 겁이 나서 못 하겠습니다."

거의 포기 상태가 되었다. 몇 번을 더 시도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이제는 정말 방법이 없다 싶었다.

담배 연기에서 얻은 아이디어

한참을 눈을 감고 있다가 다시 떴을 때, 밀폐된 브릿지 안에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해적들이 쉴 새 없이 담배를 피워댄 탓이었다. 그 연기를 보는 순간, 또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다시 화장실로 가 쪽지를 적었다. 유조선의 개인 침실에는 화재 감지기(스모크 디텍터)가 설치돼 있다. 연기가 발생하면 반드시 경보가 울리도록 돼 있고, 유조선은 최소 보름에 한 번 이 장치를 점검해야 한다. 지시 내용은 이랬다 — 화장지의 속심을 빼내고, 피우던 담배를 그 안에 넣은 뒤 작업복에 둘둘 말아, 비어 있는 선원 침실 아무 곳에나 던져 넣고 문을 닫아두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연기가 발생해 경보가 울릴 것이었다. 이 방법이 확실한지 전문가에게 미리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확실하다는 답을 들은 바 있었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이번에는 해줄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한참 후 돌아온 대답은 같았다.

"무서워서 못 하겠습니다. 선장님, 이제 그만하고 조용히 소말리아로 갑시다."

그 순간 참았던 말이 터져 나왔다.

"이 개새끼들아."

말하지 말라는 규칙까지 어기며 선언했다.

"지금부터 나는 너희 캡틴이 아니다. 너희는 너희대로, 나는 나대로 행동한다."

이제 더 이상 길이 없었다. 희망도 없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약 3마일 거리를 두고 계속 따라오던 우리 해군 함정 쪽으로 뛰어내리는 것뿐이었다. 그러면 뒤따르던 군함이 구조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24시간 감시 속에서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축하 파티, 그리고 작전 개시

새벽 3시,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깼다. 근무 교대 시간이었다. 해적들이 술을 마시며 떠들고 있었다.

"뭐 하노?"

"축하 파티다. 납치 성공했다."

이유를 물으니, 소말리아에서 배 한 척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했다. 그 배에는 수백 명이 타고 있어서, 그 배와 본선이 만나면 우리 해군의 구출 작전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계산이었다. 그래서 성공했다고 자신하는 것이었다. 해군은 계속 뒤따르며 위협 사격만 반복할 뿐, 실제 작전은 하루하루 미뤄지고 있었다. 해적들도 거의 포기한 채 술을 마시며 떠들었다.

이틀만 지나면 소말리아에 도착할 것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위협을 잊지 않았다. 이제 끝이구나 싶었다. 그래도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지 않았다.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법을 계속 궁리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총소리가 울렸다.

작전이 시작된 것이었다.

구출 작전과 부상

해적들에게 납치된 직후부터, 선장은 최대한 시간을 벌기 위해 몰래 속도를 줄이고 배를 지그재그로 운항했으며, 국제 상선 공통망을 통해 상황을 우리 군에 알렸다. 실제로 1차 작전 당시 배는 소말리아에서 상당한 거리 떨어져 있었지만, 다음 날에는 오히려 더 먼 오만 쪽으로 이동해 있었다. 조타실 고장을 핑계로 운항을 멈추기도 했고, 회사와의 통화에서 영어를 쓰는 척하며 간간이 우리말로 상황을 전달하기도 했다.

작전이 시작되자 헬기에서 집중 사격이 쏟아졌다. 그 와중에 해적 한 명이 다가와 요구했다.

"캡틴, 밖에 나가서 사격 중지시켜라."

밖으로 나가는 순간 어떻게 될지는 뻔했다. 버텼다. 선원 둘이 대신 붙잡혀 있었다. 그들을 밀어내며 말렸다.

"나가지 마라. 나가는 즉시 벌집 된다. 작전에 지장을 준다."

미닫이문 앞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선원들이 나가려면 나를 밟고 넘어가야 하는 위치였다.

"너희도 누워라."

다 함께 엎드렸다. 총소리는 계속됐다.

그러던 중 한쪽 구석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캡틴, 캡틴."

부를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마침내 나를 찾아냈고, 총격이 가해졌다.

몸에 여러 발의 총상을 입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 오히려 또렷하게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나는 살 수 있다. 정신줄만 놓지 않고 병원까지만 가면 살 수 있다.'

그 말을 되뇌며 의식을 붙잡았다.

얼마 후 우리 해군이 안으로 들어왔다. 움직일 수 있는 건 오른팔 하나뿐이었다. 팔을 들어 도움을 요청했다. 상황을 확인한 해군이 급히 무전을 보냈다.

"긴급 중상이다."

브릿지 위로 후송이 이뤄졌다. 이후 배와 헬기를 거쳐 오만 살랄라의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정신을 붙잡아야 한다는 그 생각 하나로 버텼다. 병원 앞에서 의료진을 만난 순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진통제를 놔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이후의 기억은 없다.

의식이 완전히 돌아온 것은 이미 한국으로 후송돼 병실에 누워 있을 때였다. 눈앞에 걸린 플래카드를 보는 순간, 비로소 '내가 살았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

용서, 그리고 회복

그 이후로도 고통은 오래 이어졌다. 너무 아파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끝내 버텨냈다.

퇴원 후 2~3년이 지나, 자신에게 직접 총을 쏜 해적이 국내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직접 면회를 다녀왔다.

그를 용서했다.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용서하고 나니 마음속 트라우마가 훨씬 빨리 옅어졌다. 그때 깨달은 것이 있다 — 약한 사람은 복수를 하고, 강한 사람은 용서를 한다는 것.

필생즉사, 필사즉생.

이순신 장군의 말처럼, 살려고 하면 죽고 죽기를 각오하면 산다는 이 말을 몸소 겪었다. 불의를 그냥 넘기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실패는 용서할 수 있어도, 포기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당황하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평상심을 유지해야 한다. 예전 소방학교 강의를 들었던 한 소방대원이, 화재 현장에서 갇혀 거의 포기하려던 순간 그 강의를 떠올리고 정신을 차려 살아난 일도 있었다. 정신줄을 놓지 않는 것, 그것이 전부다.

지금도 고관절은 인공관절이고, 여러 차례 수술을 거쳤다. 하루 평균 1만 7천 걸음을 걷는다. 몸을 일으키는 운동을 매일 200번씩 반복한다.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다.

QnA — 강연 후 질의응답

Q. 아덴만에서 한국까지 이동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습니까?

아덴만에서 한국까지 직항으로 오면 하루 정도 걸립니다. 다만 저는 그 당시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에, 이송 과정 자체를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제가 정신이 든 것은 아주대학교 병원 병실에서 앞에 걸린 플래카드를 본 순간이었습니다. 나중에 듣기로는, 이송 도중 중간에 한 번 연료를 다시 보급받았다고 합니다.

Q. 지금도 그때 선원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계십니까?

아닙니다. 그때 함께했던 선원들과는 각자 자기 갈 길을 갔습니다.

Q. 해군 함정이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고 하셨는데, 왜 바로 구조 작전을 펼치지 못했습니까?

나중에 제가 직접 물어봤습니다. 해적들이 일부러 "오늘 할 거다", "내일 할 거다" 하며 심리적으로 시간을 끌었던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렇게 우리 쪽 마음을 흐트러뜨리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런 심리전 때문에 작전이 계속 지연됐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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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화명생태공원에서

7월 11일, 경남문인협회가 마련한 '찾아가는 문학축제' 의령편에 다녀온 날이었다. 행사를 조금 일찍 마치고, 우리 세 사람은 화명생태공원 캠핑장으로 향했다.

준비해 간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직접 쓴 시 두 편이었다. 텐트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아, 회원 두 분이 차례로 낭송을 했다. 강물 소리와 저녁 바람 사이로 시가 흘렀다.

낭송이 끝난 뒤엔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렀다. 곁에 있던 한 분이 은퇴를 앞두고 캠핑을 시작한 이유를 들려주었다.

"퇴직 전에 늘 생각했어요. 부부가 공통으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직장 다닐 때는 남편이 낮에 나가 있으니 저녁에만 잠깐 보는데, 퇴직하면 하루 종일 같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럼 안 맞는 부분에서 자꾸 부딪히죠.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이거다 싶은 게 캠핑이었어요."

여러 번 시도하고 어긋난 끝에 찾아낸 답이었다고 했다. 그러고는 웃으며 덧붙였다.

"집을 떠나서 이렇게 나오면 오히려 좋아요. 자연 바람 쐬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집에 있다 밖에 나오면 공기부터 다르다니까요."

텐트 옆에 놓인 사과와 매운 고추를 나눠 먹으며, 소소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싶어, 옆 텐트에 있던 젊은 연인에게 부탁했다. 사진을 찍어준 청년은 무척 쾌활했다. 사진을 건네받으며 나는 별생각 없이 한마디를 보탰다.

"'석해균 선장님' 아세요? 여기 이분이 바로 그분이세요."

그 순간 청년의 표정이 바뀌었다.

"정말요? 이분이 그 선장님이세요?"

군 복무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군대에서 석해균 선장의 이야기를 교육받았다고 했다. 그 영웅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는 청년은, 그 자리에서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했다.

낯선 캠핑장 한켠에서, 한 시대를 건너 이야기가 다시 살아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석 선장님의 이야기는 그렇게, 지금도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작별 인사를 나누며, 사진을 찍어준 청년과 마지막으로 악수를 나눴다. 군 복무 시절 실제로 석 선장의 이야기로 교육받았다는 그 인연이 이 짧은 만남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캠핑장에서의 하루는 먹거리로도 풍성했다. 서울에 사는 석 선장의 아들이 아버지의 캠핑장으로 새우와 닭강정을 배달시켜 보내주었다. 멀리서도 마음을 놓지 않는 자식의 정성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곁들여진 음식은 사모님의 솜씨였다. 매콤달콤하게 무친 오징어볶음, 갓 지은 돌솥밥까지 — 어느 것 하나 예사 솜씨가 아니었다. 우리도 그 자리에서 함께 밥 한 그릇을 얻어먹었는데, 따뜻한 밥과 정성이 담긴 반찬에 절로 마음이 푸근해졌다.

차 안에는 캠핑에 필요한 도구들이 빈틈없이 갖춰져 있었다. 텐트는 벌써 네 번째로 바꿨다고 했다.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세 사람은 그렇게 텐트를 싣고 전국을 다닌다고 했다. 은퇴 후 찾은 그 '부부의 공통점'이, 이제는 삶의 리듬이 되어 영웅의 노년은 더더욱 무르익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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