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날다
박서현
산란의 지퍼를 누가 열었을까
트럭으로 새벽을 연다
바나나 한가득 싣고
손에서 손으로 건너가 작은 빵으로 돌려받는 사내
사는 게 팍팍한 그에게
가짜 은행원이 낚아 올리는 미끼가
장미꽃 정원으로 허기를 채워 주겠다는데
떨리는 숫자판에 주민번호가 낚였다
나긋나긋한 그녀가 벼랑 끝으로 보내온 머니
순간에 화들짝 봄꽃 피었다
낚시에 걸려버린 전 재산
나락이 된 사내는
가상공간에서 얼어붙었다
땀방울에서 스미지 않은 열매는 어떤 모양일까
몸싸움으로 이겨 보려 해도
보이스의 대항마저 들리지 않은 비트코인
사내는 누렇게 뜬 배춧잎으로 늘어져 있다
바나나는 언제쯤 7번 국도를 밀고 갈까
작가 노트 – 「비트코인 날다」
이 시는 실제로 보이스피싱 피해를 겪은 지인의 경험에서 출발했다.
바나나를 트럭에 싣고 새벽을 여는 그의 삶은 고단했지만, 정직했다.
그 삶에 파고든 달콤한 거짓말이, 순식간에 전 재산을 날려버린 현실 앞에서
나는 무엇을 시로 붙들어야 할지 고민했다.
“땀방울에서 스미지 않은 열매는 어떤 모양일까”하는 물음은
그가 잃은 것보다, 세상이 잃어가는 신뢰의 무게에 대한 기록이다.
이 시는 허위가 진실을 잠식해버리는 풍경 속, 고요하지만 날 선 경고다.
작가 소개
박서현은 가려진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라지거나 무너진 자리에서 시를 시작한다.
허위가 진실을 삼키는 세상에서,
시가 마지막 증언이 될 수도 있다는 믿음으로 글을 이어간다.
고단한 삶의 뒤편, 쓰러진 사람 곁에서
사라지지 않는 언어 하나를 붙잡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