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홀
터널이 부풀어 올랐다.
21세기형 터널 한 가운데
내달리던 앞차
브레이크! 급, 급브레이크!
발끝으로 짓누른 핏발 선 눈들이
일제히 얼어붙었다.
뒤엉키는 순간의 틈새
심장 박동이 튕겨 나온다
쿵쾅쾅!
흩어진 시야가
뒤꽁무니를 갈기갈기 찢었다.
불꽃 튄
금속 조각이 시간의 살점을 헤집고
찢겨진 후미등은 눈이 멀어 버렸다
나는 그 어둠 안에서 몸을 떨었다.
부서진 싱크홀 가득
비린 맛이 번졌다.
작가 노트) 나는 싱크홀이었다.
갑작스러운 사고는 외부에서 온 것이지만, 그 충격은 곧 내 안의 균열을 드러냈다.
부서지는 터널과 찢어진 시야, 그리고 그 어둠 안에서 나는 스스로의 낙하를 마주했다.
이 시는 그 순간의 진동과 침묵을 기억하고 있다.
작가 소개 (캐릭터 버전)
박서현은 낡은 감정과 반짝이는 현실 사이를 걷는다.
시는 무심한 세계를 오래 들여다보다, 결국 자신에게로 향하는 일이라 믿는다.
사라지지 않으려는 마음과 부서지는 순간들을, 조용히 기록 중이다.
박서현 시인의 「싱크홀」은 매끄럽게 잘 닦인 21세기형 문명의 표면 아래 도사린 불안과 비극을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시의 서두에서 "터널이 부풀어 올랐다"는 묘사는 일상의 평온이 임계점에 도달해 폭발하기 직전의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내달리던 앞차의 급브레이크와 함께 얼어붙은 '핏발 선 눈들'은, 속도에 길들여진 현대인이 죽음과 대면했을 때 느끼는 원초적인 공포를 생생하게 드러냅니다.
사고의 순간, 시각은 파편화되고 감각은 전도됩니다. 뒤엉키는 틈새로 튕겨 나온 심장 박동은 기계적 소음인 "쿵쾅쾅!"과 섞이며 인간의 육체와 금속의 경계를 허뭅니다. "시간의 살점을 헤집고" 들어온 금속 조각과 "눈이 멀어 버린 후미등"은 단순한 차량 파손을 넘어, 고형화된 시간이 찢겨 나가고 방향성을 상실한 인간의 위기를 상징합니다. 찢긴 시야의 뒤꽁무니를 쫓는 화자의 시선은 곧 어둠이라는 거대한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가장 경이로운 지점은 작가 노트에서 밝힌 "나는 싱크홀이었다"는 고백입니다. 도로 위에 움푹 팬 물리적 구멍으로서의 싱크홀은, 사고의 충격을 관통하며 화자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존재론적 균열'로 전이됩니다. 부서진 싱크홀 가득 번지는 '비린 맛'은 생명의 위협 앞에서 느끼는 생생한 혈액의 감각이자, 문명의 외피가 벗겨진 자리에 남은 날것의 진실입니다.
결국 이 시는 외부의 재난이 어떻게 개인의 내밀한 어둠을 촉발하는지를 보여주는 심리적 보고서입니다. 터널이라는 닫힌 구조 속에서 마주한 싱크홀은,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었던 세계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폭로함과 동시에 그 어둠의 끝에서 비로소 스스로의 '낙하'를 직시하게 만듭니다. 박서현 시인은 부서지는 순간의 진동을 고요한 기록으로 치환하며, 독자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견고한 일상 아래에는 어떤 싱크홀이 숨죽이고 있느냐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