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2026-03-10

푸른 말문을 틔우다

푸른 말문을 틔우다/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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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등줄기 하나 말문을 쏘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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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속내를 묶은 야생란 한 포기

집으로 데려왔다

옮겨심은 화분을 물자리에 밀어두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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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낮춘 베란다에서

햇살 몇 조각 들락거릴 때마다

동면의 기도가 옆구리를 간질였을까

시간의 안쪽

땅을 밀고 무릎을 세운

종아리는 누가 뽑아 올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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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히 놀랐어

누추한 잎과 잎 사이

차가운 기억들 흐려지고

겨드랑이로 쏘아 올린 연록의 문장

말문을 틔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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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밥으로

때론 소나기로 밥을 주었지만

하늘 측면으로

물의 숨소리가 새어 나왔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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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잦은 기침으로

기다림은

성호를 그었어

멈췄던 숨이 한 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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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한 줄 난 뻗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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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베란다에서 건져 올린 연록의 문장, 「푸른 말문을 틔우다」

산의 꼿꼿한 등줄기를 닮은 야생란 한 포기를 집으로 들여온 날이 있었습니다. 야생의 숨결을 머금은 그 '푸른 속내'를 좁은 화분에 옮겨 심고, 베란다 구석 볕이 잘 드는 물자리에 가만히 밀어 두었지요. 그것은 단순히 식물을 키우는 일이 아니라, 내 삶의 한구석에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문장 하나를 심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도시의 베란다는 산에 비하면 참으로 낮고 누추합니다. 그 좁은 틈으로 햇살 몇 조각이 들락거릴 때마다, 나는 화분 속 깊은 잠을 자는 난의 안부를 살폈습니다. 차가운 흙 속에서 누가 저 가느다란 종아리를 밀어 올리는 걸까. 보이지 않는 시간의 안쪽에서 난은 스스로 무릎을 세우며 '동면의 기도'를 올리고 있었나 봅니다.

가끔은 게으른 밥(물)으로, 때로는 무심한 소나기처럼 밥을 주며 지켜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잎과 잎 사이, 그 비좁은 틈을 비집고 연록의 빛이 쏘아 올려졌습니다. 순간, 환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난이 내뱉은 생의 첫 마디이자, 오랫동안 가슴속에 고여 있던 나의 차가운 기억들을 흐릿하게 만드는 따스한 '말문'이었습니다.

밤마다 잦은 기침을 하며 무언가를 기다려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간절함이 있습니다. 멈췄던 숨이 한 발짝 내디딜 때, 난의 겨드랑이 사이로 뻗어 나간 그 푸르른 한 줄은 곧 나에게 건네는 위로였습니다. "이제 됐어, 너도 네 안의 문장을 틔워도 좋아"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지요.

난을 키우는 일은 결국 나를 키우는 일이었습니다. 물의 숨소리가 새어 나오던 그 고요한 투쟁 끝에 터져 나온 연록의 문장들. 오늘 제 블로그를 찾아주신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오랜 기다림 끝에 기어이 뻗어 나갈 '푸른 말문' 하나가 싹트길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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