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2026-03-10

텃밭의 기록

텃밭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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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랍마다 너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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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딧물이 엉겨붙는 걸 막으려

여린 잎에 뿌릴 물과 섞은 약

그것은 초록을 지켜낼 온전한 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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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무기 노즐이 내뿜는 분수

허공에 쪽지를 걸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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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줄기가 독기를 씻어줄‘예보’라 믿었다

푸성귀와 토마토들

생생하게 웃을 거라는 상상은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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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일이야?”

얼굴빛 타 들어간

오이의 신음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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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음표가 꺼져가던 사과와 복숭아

텃밭을 밝히던 장미꽃마저

잘못 뿌려진(뿌린) 제초제에 무너진(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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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았던 서바이벌에

눈앞이 캄캄해진 습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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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져 앉아

다시 숨 쉴 모종 한 포기 푸른 햇살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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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별장에서 벌어진 부부의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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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잘못 쓴 문장이 휩쓸고 간 습작실, 다시 심는 푸른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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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현 시인의 「텃밭의 기록」은 사랑과 보호라는 선한 의지가 예기치 못한 실수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는 찰나를 서늘하면서도 다정한 시선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의 도입부에서 "나의 서랍마다 너는 있다"는 고백은, 이 텃밭이 단순한 경작지가 아니라 작가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은 소중한 기억의 저장소이자 창작의 원천임을 암시합니다. 진딧물로부터 여린 잎을 지켜내려 분무기 노즐을 당기던 그 정성스러운 손길은, 마치 원고지 위의 거친 문장들을 다듬어 온전한 '초록의 완성'을 꿈꾸는 시인의 고뇌와 닮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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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흩뿌려진 분무기의 안개는 비극을 예감하지 못한 채 내건 희망의 쪽지였습니다. 빗줄기가 모든 독기를 씻어내고 푸성귀와 토마토가 생생하게 웃을 것이라는 상상은, 제초제라는 잔혹한 현실 앞에서 순식간에 무너져 내립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라는 비명 섞인 물음은 얼굴빛이 타 들어가는 오이의 신음을 넘어, 정성을 다해 일구어온 삶의 터전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린 인간의 망연자실함을 대변합니다. 온음표처럼 풍성하게 열매 맺던 사과와 복숭아, 텃밭의 등불 같던 장미마저 무너뜨린 것은 다름 아닌 '잘못 배달된 처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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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이 참혹한 광경을 '원치 않았던 서바이벌'이 벌어지는 습작실에 비유합니다. 공들여 쓴 문장들이 한순간의 실수로 퇴고 불능의 상태가 되어버린 것처럼, 눈앞이 캄캄해진 절망 속에서 작가는 구겨져 앉습니다. 그러나 시의 진정한 가치는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합니다. 폐허가 된 텃밭의 잔해 속에서도 시인은 포기 대신 "다시 숨 쉴 모종 한 포기"를 찾아냅니다. 그것은 부서진 문장들을 다시 이어 붙여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려는 작가적 의지이자, 상처 입은 친구 부부에게 건네는 가장 푸른 위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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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시는 실수가 빚어낸 비극에 매몰되지 않고, 그 잿더미 위에서 다시 '푸른 햇살'을 모으는 회복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텃밭의 기록은 곧 우리 삶의 기록이며, 실패한 습작 뒤에 반드시 다시 쓰일 걸작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는 시인의 단단한 약속입니다. 박서현 시인의 이 따뜻한 기록이, 텃밭을 잃은 누군가의 마음속에 다시금 푸른 모종 한 포기를 심어주는 귀한 햇살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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