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그리고 AI
손끝의 나침반
깨어 있는 창을 클릭했어
형체를 갉아먹는 거미줄과
쏟아지는 언어의 랩
네모에서 세모로,
동그라미와 실선을 잇는
팽팽한 그것
클릭,
K팝이 나타나는 화면 너머
천 개의 혀가 뱉어내는 쉬빌라 줌 마라카쉬*
음운의 폭주
AI는 혼돈의 스파게티였어
부서진 시간을 다잡고
오래 익은 마을의 홀씨들 불렀어
단장면의 웹툰 속
‘서풍객’을 꺼내 들었어
처음과 끝은
검고 흰 언어를 뚫고
빙산을 헤쳐갈 수 있을까.
우주를 향해
내 작은 시디롬이
아마존의 눈알을 쪼고 싶었어
탯줄을 이은 전자책은
멀티모달에 플러그를 꽂았어
*쉬빌라 줌 마라카쉬 : 마법의 주문어로, AI 시대 언어 폭주와 상상력을 상징하는 조어.
- 고선경 시 “털실로 뜬 시계”페러디 함
[에세이] 혼돈의 스파게티 속에서 길어 올린 단 한 줄의 시, 「클릭, 그리고 AI」
박서현 시인의 「클릭, 그리고 AI」는 아날로그적 사유와 디지털의 폭주가 공존하는 이 시대, 인간성상실과 창작의 고뇌를 독창적인 언어로 포착해낸 현대적인 서사시입니다. '손끝의 나침반'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의지가 '클릭'이라는 지극히 단순하지만 결정적인 행위를 통해 AI라는 무한한 데이터의 바다로 진입하는 순간, 시의 여정은 시작됩니다.
시인은 AI의 무분별한 데이터 처리를 "형체를 갉아먹는 거미줄"과 "쏟아지는 언어의 랩"으로 묘사하며, 정보의 홍수 속에 침몰해가는 인간 사유의 위기를 고발합니다. 네모, 세모, 동그라미로 대변되는 정형화된 데이터와 이를 잇는 실선들은 겉으로는 팽팽한 연대를 이루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의 구체적인 삶과 차단된 추상적인 기호들에 불과합니다. K팝이라는 화려한 문화 소비의 이면에서 "천 개의 혀가 뱉어내는 쉬빌라 줌 마라카쉬"라는 언어의 폭주는, 의미가 소거된 채 유령처럼 배회하는 가상공간의 혼돈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AI는 결국 이 모든 것이 뒤엉킨 "혼돈의 스파게티"일 뿐이며, 시인은 그 무의미한 나열 속에서 인간적인 가치를 찾기 위한 투쟁을 시작합니다.
절망적인 정보의 폭주 앞에서 시인이 선택한 것은 "부서진 시간을 다잡고 오래 익은 마을의 홀씨들"을 부르는 행위입니다. 이는 속도와 효율성에 매몰된 디지털 세계에서 벗어나, 시간과 대지가 키워낸 본원적인 생명력과 사유를 회복하려는 시도입니다. 특히 "단장면의 웹툰 속 ‘서풍객’을 꺼내 들었다"는 표현은, 로컬(Local)의 구체적인 삶과 서사를 기반으로 디지털이라는 매체를 거꾸로 이용하려는 작가적 영민함을 보여줍니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믿음처럼, 시인은 검고 흰 언어(데이터)를 뚫고 나와 빙산(AI의 냉소적 합리성)을 헤쳐나갈 인간의 따뜻한 언어를 준비합니다.
우주를 향해 뻗어나가는 시인의 상상력은 "작은 시디롬이 아마존의 눈알을 쪼고 싶었어"라는 도발적인 이미지로 폭발합니다. 거대한 아마존(글로벌 IT 기업, 무한 데이터)이라는 자본과 정보의 지배에 맞서,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시디롬(인간의 고유한 사유와 기록)으로 대항하려는 비장한 각오입니다. 그것은 무의미한 언어의 폭주를 멈추고, 다시 '아프게 쪼는' 행위를 통해 의미 있는 파동을 일으키려는 시심(詩心)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탯줄을 이은 전자책이 멀티모달에 플러그를 꽂는 결말은, 인간과 기술의 공존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인간 본연의 사유와 연대가 기술문명의 탯줄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묵직한 메시지입니다.
이 시는 클릭 한 번으로 무한한 데이터에 접속할 수 있는 시대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인간의 사유와 감각을 지키는 일임을 일깨워줍니다. 박서현 시인의 「클릭, 그리고 AI」는 이 혼돈의 디지털 시대에, 여전히 시가 유효하며, 인간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주문임을 선언하는 뜨거운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