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물에 등불 / 박서현(청솔빌리지에서 함축 본) 청솔이 달집을 쌓아간다. 달의 온기로 열두 달 평온을 모으는 날 그을린 마음을 들춰본다. 삼재가 뜯어먹은 낡은 속옷과 팥 한 줌, 달문에 걸렸다. 대보름 강물 위에 등불 내걸리고 |
[에세이] 강물에 띄운 마음의 달무리가 평온에 닿을 때
진주 남강의 물결은 예부터 수많은 이야기와 눈물을 품고 흘러왔다. 그 푸른 물길 위에 등불이 내걸리는 순간, 강은 더 이상 흐르는 물이 아니라 하늘의 별들이 내려와 쉬어가는 거대한 은하수가 된다. 박서현 시인의 「강물에 등불」은 정월 대보름의 달집태우기라는 제의적 풍경을 빌려와, 우리네 고단한 삶을 씻어내고 강물 위로 평온의 등불을 띄워 올리는 간절한 기도를 담고 있다.
시 속의 ‘청솔’은 묵묵히 달집을 쌓아간다. 달집은 단순히 나무를 쌓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지난 일 년, 혹은 십수 년의 세월 동안 삶의 파도에 부딪히며 ‘그을린 마음’을 정직하게 들춰보는 성찰의 의식이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삼재(三災)가 갉아먹은 듯한 생채기를 안고 산다. 시인은 그 아픔을 ‘낡은 속옷’과 ‘팥 한 줌’으로 형상화하여 달문에 걸어둔다. 태워버려야 할 과거와 쫓아버려야 할 액운을 달빛 아래 공증받는 셈이다.
이 시가 진주 유등축제의 시화전에서 더욱 빛나는 이유는 ‘달집’의 불꽃과 ‘강물’의 등불이 만나는 지점 때문이다. 달집이 하늘을 향해 타오르는 뜨거운 상승의 에너지라면, 강물 위의 등불은 수면을 따라 낮게 흐르는 고요한 확산의 에너지다. 타오르는 불꽃이 상처를 소멸시킨다면, 흐르는 등불은 남은 슬픔을 위로하며 멀리 실어 보낸다.
“열두 달 평온을 모으는 날”이라는 구절은 시화전을 찾은 이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축복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소망을 담아 등불을 내걸고, 그 불빛이 강물을 따라 ‘청솔빌리지’라는 평화로운 정착지에 닿기를 소망한다. 시 속에서 ‘빌리지’는 이제 단순한 지명을 넘어, 상처 입은 영혼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이자 서로의 불빛을 확인하며 안도하는 안식처가 된다.
진주 남강의 유등은 임진왜란 당시의 비극을 승화시킨 역사적 산물이다. 박서현 시인의 시는 그 역사적 무게 위에 개인의 서사라는 살을 붙여,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당신의 마음은 무엇에 그을려 있는가, 그리고 당신은 어떤 등불을 강물 위에 띄울 것인가.
대보름의 둥근 달이 남강 위에 걸리고 달집의 연기가 허공으로 흩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비워내야만 다시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시인이 들춰낸 그을린 마음은 이제 강물의 온기로 씻겨 내려가고, 그 자리에는 ‘열두 달의 평온’이 등불처럼 환하게 피어오른다. 이 시화전을 지나는 모든 이들이 시인의 문장을 징검다리 삼아, 자신의 삶이라는 강물 위에 단단한 평화의 등불 하나씩 내걸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