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2026-03-11

타임캡슐

타임캡슐

-송은의 벽화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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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에 사립문 닫아 놓아 꽃잎은 쌓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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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에서

낡은 사립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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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산의 봉분이

송계에 깃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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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 부려놓은 어미소 솔향을 뜯고

납작한 철부지들은

자치기와 숨바꼭질로 비밀을 거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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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에 캄캄한 봉분

그 속에

멎어버린 물결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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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터에 돌덮개를 젖히니

첩첩 타임 속 예복은

세상 밖의 은은한 캡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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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 박익 벽화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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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깃길로 피어나는 한 땀 한 땀 보물꽃

숨결이 다가와

뒷덜미를 덥석 움켜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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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간의 빗장을 열다: 밀양 고법리 박익 벽화묘에서 만난 타임캡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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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시 청도면 고법리, 야트막한 산자락을 등지고 앉은 송은 박익(松隱 朴翊, 1332~1398)의 벽화묘(보물 제1147호)는 단순한 무덤이 아닙니다. 그것은 고려 말 조선 초라는 격동의 시대를 고스란히 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즈넉한 '타임캡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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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 박익 선생은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낙향하여 은거한 '두문동 72현' 중 한 분입니다. 그의 절개와 학문은 후대에 길이 남았고, 그의 묘소는 당대의 생활상과 예술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산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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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처럼, "석양에 사립문 닫아 놓아 꽃잎은 쌓이는데"라는 구절은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벽화묘의 분위기를 압도합니다. 돌로 쌓아 만든 묘실 안으로 들어서면, 600여 년 전의 시간이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사면의 벽과 천장에는 당시의 풍속과 의식을 담은 벽화들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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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는 소박하지만 세련된 필치로 당대의 생활상을 보여줍니다. 끈을 풀어놓은 어미 소가 솔향을 뜯고, 아이들이 자치기와 숨바꼭질을 하며 노는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습니다. 마치 어제 일어난 일인 듯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동시에, 장맛비에 캄캄한 봉분 속에 멎어버린 물결의 기억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엄숙하게 상기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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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인 것은 봉분의 돌덮개를 젖혔을 때 드러난 '예복'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예복은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은은한 빛을 발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의 옷이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의 숨결과 정신이 담긴 '은은한 캡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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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이 예복을 '이야깃길로 피어나는 한 땀 한 땀 보물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것은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로 이어지는 통로이자, 우리가 잊고 지냈던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전해주는 선물입니다. 벽화묘 앞에 서면, 시대를 초월한 거대한 시간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그 숨결은 우리의 뒷덜미를 덥석 움켜쥐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역사의 현장에 서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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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고법리 박익 벽화묘는 단순한 유적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시간의 비밀을 간직한 신비로운 공간이자, 우리가 과거를 배우고 현재를 되돌아보는 거울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600여 년 전의 시간을 만나고,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을 느끼며, 역사와 문화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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