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2026-03-13

제상보를 헹구다/박서현

제상보를 헹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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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거품이 갉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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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 전 모셨던 제사상

기름기 누렇게 번져 간 제상보를 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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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불렸더니

어머니의 어머니 이야기가 소용돌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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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한 철을 지나 다시

문턱을 넘었다

아래채 제기 위에

까슬까슬한 기억을 가지런히 두었더니

빨랫물 속 어머니가 재실 마당까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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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웅크리고 앉아

풀을 뽑고 계셨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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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째 왔노, 돌아서면 또 풀이 움북하다,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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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 한켠에서 흐려지던 한 마디를

나는

아직도 붙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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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세월의 기름때를 헹구며 만난 어머니

석 달 전, 정성껏 모셨던 제사상을 뒤로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삶의 분주함에 쫓겨 잠시 잊고 있었던 제상보를 뒤늦게 꺼내 들었다. 누렇게 번진 기름 자국들, 그것은 단순한 음식의 흔적이 아니라 세월이 겹겹이 쌓아 올린 시간의 무게이자 잊혀가던 기억의 얼룩이었다. 나는 그 얼룩을 지우기 위해, 아니, 그 속에 잠겨있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차가운 물에 제상보를 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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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닿는 순간, 제상보는 마치 오래된 지도가 거품 속에 녹아내리듯 서서히 형체를 잃어갔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치는 물결 속에서, 나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어머니의 어머니, 그리고 그 너머의 이야기들을 만났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이어져 온 여인들의 삶, 그 땀과 눈물, 그리고 헌신이 물보라 속에 흩어졌다 다시 모이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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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름 한 철을 보내고 다시 일상의 문턱을 넘어섰다. 깨끗하게 헹궈 볕에 말린 제상보는 까슬까슬한 질감 속에 빳빳한 기억을 머금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아래채 제기 위에 가지런히 개어두었다. 그 순간, 빨랫물 속에 흐릿하게 비치던 어머니의 모습이 마당을 지나 재실(齋室) 마당까지 번져나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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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 어머니는 늘 마당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풀을 뽑고 계셨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에도, 어머니의 손길은 쉬지 않았다. "우째 왔노, 돌아서면 또 풀이 움북하다, 아이가." 무심한 듯 내뱉으시던 그 한마디가, 쟁쟁하게 귓가를 맴돈다. 그것은 자식에 대한 걱정이자, 거친 삶에 대한 어머니만의 무뚝뚝한 한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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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여름, 재실 마당의 풀을 뽑으시던 어머니는 40도에 육박하는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셨다. 그날의 뜨거운 햇살과, 어머니의 땀방울, 그리고 쓰러지시던 순간의 비명은 아직도 내 가슴 속에 선명한 낙인처럼 남아있다. 이후 오랜 세월을 요양병원에서 보내시다 돌아가셨지만, 나는 아직도 재실 마당의 잔디 한켠에서 흐려지던 어머니의 그 한마디를 차마 놓지 못하고 붙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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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상보의 누런 기름때는 헹궈낼 수 있었지만, 내 가슴 속에 번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은 지워지지 않는다. 돌아서면 또 움북하게 자라나는 풀처럼, 그리움은 날이 갈수록 더 깊고 무겁게 쌓여만 간다. 오늘, 나는 세월의 기름때를 헹구며 다시 한번 어머니를 만났다. 그리고 비록 눈앞에는 계시지 않지만, 내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어머니의 마지막 숨결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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